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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교회야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036
한자 聖安敎會夜學
영어의미역 Seongan Church Night School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문화·교육/교육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대로507번길 148[가야동 60-15]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야학 단체
설립자 신기엽|허천호|박욱영 등
설립 시기/일시 1977년 말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79년 말연표보기 - 해체
최초 설립지 성안교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동 60-15지도보기

[정의]

1977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동에 설립된 부산 지역 최초의 노동 야학.

[설립 목적]

1977년 12월 말 노동자의 계급적 각성을 통하여 노동 운동의 현장 활동가를 육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설립을 주도한 이들은 부산 출신으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신기엽, 박순성 등이었다. 학내에서 일정한 학습을 거치고 활동을 하고 있던 이들은 방학이나 휴학 중 부산에 와서 양서판매이용협동조합이나 중부교회 등을 통하여 활동을 모색하다가, 고등학교 친구인 부산대학교의 허천호와 강용현, 부산공전의 박욱영 등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성안교회야학을 만들게 되었다.

[변천]

성안교회야학은 성안교회에서 1년 과정의 생활 야학 형태로 학생을 모집하였다. 시기적으로 부산 지역 노동 야학의 출발로 보인다. 1978년 8월 2기 신입생이 들어왔고, 1979년 8월 3기 신입생이 들어오면서 1기가 졸업하게 되었다. 이후 1기 졸업생이 강학(講學)[야학의 교사]으로 참여하기도 하면서, 부산대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강학의 구성이 대폭 바뀌게 된다. 그해 10월 16일 일어난 부마 민주 항쟁에 성안교회야학의 강학들이 연루되면서, 성안교회로부터 압력을 받게 되었다. 결국 1979년 말 성안교회의 요청으로 야학을 정리하였다. 이후 졸업생 박주미가 속한 가톨릭노동청년회[지오세]의 도움을 받아 가야성당으로 야학을 옮겼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수업의 내용은 수학, 영어, 음악 등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과목이 주를 이루었다. 노동 야학의 성격을 지향하기는 했지만 최초의 사례인 탓에 그에 걸맞은 교과 과정을 갖추지는 못했다. 이에 야학의 학생들과 인격적인 유대와 신뢰를 쌓는 일을 주요한 활동으로 하였다.

[의의와 평가]

성안교회야학은 비록 존립 기간은 2년 정도로 짧았으나, 부산 지역 최초의 노동 야학이었다. 이로써 부산 지역 발생기 노동 야학의 양태를 알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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