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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170
한자 趙福俊
영어음역 Jo Bokjun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수영동 229-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예술인
성별
본관 함안(咸安)
대표경력 「수영 야류」 악사 기·예능 보유자
출생 시기/일시 1920년 8월 3일연표보기 -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33년 - 수영공립보통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72년연표보기 - 「수영 야류」 악사 기·예능 보유자로 인정
몰년 시기/일시 1996년 12월 15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조복준 출생지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거주|이주지 조복준 거주지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학교|수학지 수영공립보통학교 -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 1동 71
활동지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지도보기
활동지 부산대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산30지도보기
활동지 부산경상전문대학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 8동지도보기
활동지 경희대학교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활동지 고려대학교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정의]

현대 부산 「수영 야류」의 악사 기·예능 보유자.

[활동 사항]

조복준(趙福俊)은 본관이 함안(咸安)이며, 1920년 8월 3일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서 태어났다. 「수영 야류」[수영 들놀음]의 말뚝이 역 기·예능 보유자인 조재준(趙在俊)[1906~1974]의 동생이다. 「수영 야류」의 복원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 말뚝이 춤의 명인 조두영(趙斗榮)[1892~1964]은 조복준 형제의 일가 숙부이다. 조두영의 장남으로 수영 탈 제작의 기·예능 보유자인 조덕주(趙德周)[1914~1983]와 조두영의 차남으로 말뚝이 역을 맡아 기·예능 보유자 후보가 된 조덕칠(趙德七)[1932~1995]은 모두 조복준의 일가 종형제(從兄弟)이다.

또한 「수영 야류」의 영감 역 예능 보유자인 조홍복(趙弘福)[1933~2023 ]은 조복준 형제의 재종형제(再從兄弟)이다. 이들은 대대로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수영성(水營城) 북문 일대에 거주하면서 수영성 동문 일대의 태씨(太氏) 일가와 함께 「수영 야류」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였다.

조복준은 수영공립보통학교[현 부산수영초등학교]에 입학하여 1933년에 졸업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수영 지역의 대표적인 민속인 「수영 야류」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집안 내력으로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조복준에게 「수영 야류」를 가르친 이는 「수영 야류」의 원로인 최한복(崔漢福)[1885~1968]과 집안 숙부인 조두영이었다.

들놀음이라 불리는 야류(野遊)는 낙동강 서쪽의 「가락 오광대」와 더불어 낙동강 남부 일대의 민속 가면극으로, 이 가운데 「수영 야류」「동래 야류」와 더불어 부산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민속극이었다.

하지만 1935년 이후 일제가 집단적 집회를 금지하면서 「수영 야류」의 전승은 단절되었고, 「수영 야류」의 재현과 복원은 일제의 지배가 끝나고서야 가능하였다. 해방 이후 이를 주도한 이들은 조복준의 스승인 최한복조두영을 비롯하여 태명준(太命俊)[1906~1979] 등 수영 토박이들이었다.

이들은 1946년 정월에 부산수영초등학교[현 부산수영초등학교]에서 강덕수, 이차하, 박인로, 박상도, 안명룡 등과 함께 「수영 야류」를 재현하는 공연을 펼쳤다. 1960년대 이후 「수영 야류」의 복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1963년 4개 과장으로 구성된 「수영 야류」 전 과장의 대사, 탈, 연기 등이 완성되었다. 오늘날 「수영 야류」의 원형이 비교적 옛 모습을 유지하면서 전승되고 재현된 데는 이 같은 토박이 수영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러한 수영의 지역 정서와 가문의 영향 속에서 조복준은 50여 년 동안 「수영 야류」의 악사로 활동하였다. 그 결과 1972년 「수영 야류」가 중요 무형 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면서 조복준「수영 야류」의 기·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이후 조복준「수영 야류」의 전승을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섰는데, 특히 1974년 수영 민속 예술 전수관이 준공된 후 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가 주관하는 각종 공연에 악사로 참여하였다.

1980년대에는 대학생 민속 예술 동아리를 대상으로 하는 전수 교육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이는 뒤에 「수영 야류」 꽹과리 기·예능 보유자가 된 윤수만(尹守萬)[1917~2009]과 태명준의 아들인 태덕수(太德守) 등이 주도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 조복준부산대학교, 경상전문대학[현 부산경상대학], 서울의 경희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등의 민속 예술 동아리를 대상으로 하는 전수 교육 강사로 참여한 기록이 남아 있다. 만년까지 「수영 야류」의 전승을 위한 활동에 헌신한 조복준은 1996년 12월 15일 향년 76세로,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2년 2월 26일 「수영 야류」의 악사[장고] 기·예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2.09 내용 수정 조홍복 사망으로 몰년 추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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