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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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駕洛五廣大 |
영어음역 | Ogwangdae |
영어의미역 | Five-episode Mask Dance Indigenous to the Garak-myeon |
이칭/별칭 | 「김해오광대」,「김해 가락오광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작품/무용과 민속극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조수미 |
성격 | 민속 연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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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구분 | 가면극 |
주요등장인물 | 말뚝이|영노|양반|노장 |
공연자/보유자 | 조장수[1890~1928, 징과 북]|조광하[1919~1988, 말뚝이역]|김상기[1909~1988, 영노역]|하문찬[1911~1944, 노장역]|곽성준[1917~1990, 양반역] |
형성 시기/일시 | 1890년대 - 형성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7년 - 일제 탄압으로 중단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4년 - 김해문화원에서 복원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0년 - 경상남도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서 장려상 수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6년 - 경상남도 민속 예술 경연 대회에서 최우수상 수상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7년 - 제38회 전국 민속 예술 경연 대회 장려상 수상 |
초연|시연장 |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속 연희.
[개설]
「가락 오광대」는 주로 음력 정월 대보름날 밤에 연희되던 탈놀음이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은 1989년 행정 구역이 변경되기 이전에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락 오광대」를 「김해 오광대」 또는 「김해 가락 오광대」 등이라고도 한다. 「가락 오광대」는 파계승의 풍자, 양반에 대한 조롱, 일부(一夫) 대 처첩 간의 삼각관계 등을 보여 주고 있다.
[구성 및 형식]
「가락 오광대」는 중마당, 노름꾼마당, 양반마당, 영노마당, 할미마당, 사자마당의 여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등장인물은 종가 양반, 터럭 양반, 애기 양반[도령], 말뚝이, 포졸, 어딩이[무시르미의 아버지], 영감, 할미, 작은이, 마을 사람, 아기, 봉사, 의원, 영노[비비새], 비비 양반, 중, 상좌, 사자와 노름꾼 3명, 상두꾼 3명 등 모두 28명이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데, 상두꾼·봉사·아기 등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가락 오광대」의 가면은 주로 바가지로 만들지만, 간혹 나무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내용]
‘중마당’은 노장과 상좌가 등장하여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으로, 이때 「중타령」을 부른다. ‘노름꾼마당’은 노름꾼들이 투전 놀이를 할 때 절름발이 어딩이가 무시르미를 업고 나와 개평을 달라고 하는데, 거절당하자 판돈을 훔쳐 달아나다가 포졸에게 붙잡혀 끌려간다는 내용이다. ‘양반마당’은 양반 3인이 말뚝이를 불러 시종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을 질책하지만 도리어 말뚝이에게 봉변을 당하고, ‘영노마당’에서는 영노가 양반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할미마당’은 가부장과 처첩 사이의 삼각관계를 다룬 것이며, ‘사자마당’은 사자가 담비를 잡아먹는다는 내용이다.
[연행 시기 및 관련 의례]
「가락 오광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공통적인 것은 죽림 마을의 마을굿의 일환이었다는 점이다. 다만 순서가 다른데, ‘당산제→ 오광대→ 지신밟기’의 순, ‘지신밟기→ 당산제→ 줄다리기→ 오광대’의 순, ‘당산제→ 지신밟기→ 오광대→ 달집태우기’ 순이었다는 설이 있다. 현지 조사에 따르면 죽림 마을의 마을굿은 정초부터 시작하여 정월 대보름 전날까지는 ‘지신밟기’를 하고,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 줄다리기→ 달집태우기→ 오광대’ 순으로 마을굿을 행한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날 밤, 마을 수호신에 대한 제의와 풍요를 도모하는 세시 의례를 행한 후 지역민의 통합을 위한 축제의 장으로 행해진 것이 「가락 오광대」이다.
[현황]
「가락 오광대」는 1937년 중일 전쟁이 나기 전까지 전승되었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 놀이꾼이 사라지자 연기와 춤 등을 계승하는 사람이 없어 전승이 거의 끊어졌다. 그 후 전 김해문화원 류필현 원장과 김해시립전통무용단 김덕명 단장이 1986년 10월부터 「가락 오광대」의 복원 발굴을 단행하여 「가락 오광대」를 재현하였고, 현재는 김해민속예술보존회에 의해 전승·연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가락 오광대」의 ‘중마당’은 풍류를 통한 신명풀이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다른 가면극의 ‘중마당’이 파계승에 대한 풍자와 불교에 대한 반감을 담고 있는 것과 다르다. 또 ‘영노마당’과 ‘사자마당’에서도 대립 끝에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것으로 종결된다. 즉, 민중적인 비판 의식보다는 화해와 통합을 더욱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가락 오광대」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마당은 ‘노름꾼마당’과 ‘할미마당’이다. 「가락 오광대」는 다른 오광대와 달리 노름판의 노름꾼 대신 판돈을 훔쳐 달아난 어딩이를 응징한다. 이것은 도박에 관해서는 관대한 반면 도둑질에 대해서는 엄격했던 이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죽림 마을은 선창가, 장터를 중심으로 외지인들을 위한 위락 산업이 주된 소득원이었던 곳으로 노름의 폐해를 인정하면서도 암묵적으로 허용했던 마을 사람들의 의식이 연희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할미마당’은 할미가 아닌 영감이 화병으로 죽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는 이 마을 당산제가 당산 할미에 대한 것이라는 것과 연결된다. 당산 할미를 신앙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할미마당’을 통해 여성의 우위를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