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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437
한자 釜山梵魚寺大雄殿
영어의미역 Daeungjeon Hall at Beomeo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원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602년연표보기 -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다시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613년연표보기 - 묘전 화상이 승려 해민 등과 함께 중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13년연표보기 - 승려 흥보가 주관하여 중건하고 단청함
개축|증축 시기/일시 1720년연표보기 - 승려 대준, 우화, 처환, 처운이 석계(石階)를 수리하고 불상을 개금함
개축|증축 시기/일시 1814년연표보기 - 기와를 새로 얹음
개축|증축 시기/일시 1871년연표보기 - 단청
문화재 지정 일시 1966년 2월 28일연표보기 - 부산 범어사 대웅전 보물 제43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산 범어사 대웅전 보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범어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지도보기
성격 불전
양식 다포식 맞배지붕 기와집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3칸
소유자 범어사
관리자 범어사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있는 조선 후기 범어사의 중심 불전.

[개설]

부산 범어사 대웅전(釜山梵魚寺大雄殿)은 부산 지역의 대표 사찰인 범어사의 주 불전(主佛殿)이다. 대웅전을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도 하는데, ‘대웅’이란 부처의 덕호(德號)이다. 대웅전은 어느 사찰이든지 그 사찰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불전은 17~18세기에 중창된 건물들이 많다. 특히 임진왜란을 심하게 겪은 부산 지역의 불전은 대부분 이 시기에 중창되었다. 주 불전의 대부분은 다포식(多包式) 건물이기 때문에 건물의 특징은 공포(栱包) 형식으로 구분된다. 공포의 보 방향으로 놓이는 부재를 제공(提栱)이라고 하는데, 이것의 짜인 형태에 따라서 시대적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제공 변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저울대 방식에서 중첩판 방식으로의 변화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는 저울대 방식이 상부의 하중을 소로(小櫨)를 통해 하부의 첨차(檐遮)로 전하는 구조임에 비하여, 중첩판 방식은 상부의 하중을 소로뿐만 아니라 판재의 상단 면에 고루 분산시켜 하부로 전달하므로 구조적으로 유리한 형태이다. 또한 의장적인 측면에서도 중첩된 판구조(板構造)의 제공은 상하 부재를 일체화시켜 연속된 장식 문양을 부가함으로써 장엄 효과를 높일 수 있다.

한편 제공의 외부는 교두형(翹頭形)과 쇠서형으로 나누어진다. 쇠서형은 다시 초엽, 연화 등이 덧붙여진 형태로 구분된다. 제공 외단이 쇠서로 된 경우는 교두형보다 늦게 나타나는 형식이다. 쇠서의 형식도 초기 형태는 아래로 뻗은 강직한 형태를 갖지만 점차 부리가 위로 향하면서 의장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또한 쇠서 부리를 당초의 줄기로 생각하여 당초 문양으로 장식하기도 한다. 쇠서 상하에 초각(草刻)을 덧붙이기도 하는데, 시대가 내려오면서 연봉오리를 초각하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쇠서 부리의 상부에 연화가 조각되어 덧붙은 형태도 있고, 쇠서 부리가 나가는 부분에 초각과 함께 연봉이 들어간 형태도 있다. 또한 꽃봉오리로 초각한 것, 반개한 모습으로 초각한 것, 만개한 모습으로 초각한 것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면서 장엄 효과를 더욱 풍부하게 하였다. 특히 연화가 사용된 경우에는 용머리, 봉황 머리 등 조각적인 요소가 조합되는 경우가 많다. 연화가 사용된 공포는 의장 효과가 컸으므로 조선 말기까지 사찰 건축의 주류를 점하면서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의 공포는 제공의 짜임은 중첩판 방식이고, 제공의 형식이 쇠서형이면서 일제공~삼제공(三提栱)의 쇠서가 비교적 강직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쇠서 부리 상부에는 아무런 초각이 없다. 이러한 점은 제공에 쇠서가 없는 무하앙식 공포와 대비되는 것으로, 조선 전기 건물로 분류되고 있는 안동 봉정사 대웅전(安東鳳停寺大雄殿)과 조선 중기 건물인 창녕 관룡사 대웅전(昌寧觀龍寺大雄殿) 공포와 비교된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에서는 초제공 내외가 모두 교두형이고 이제공(二提栱) 외부 살미 끝은 쇠서로 되었는데, 삼제공 살미는 내외 모두 삼분두(三分頭)로 처리되었다. 반면 창녕 관룡사 대웅전에서는 일제공·이제공의 외부 살미는 앙서로 되었고 내부는 교두형이며, 삼제공은 내외가 모두 교두형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러나 부산 범어사 대웅전에서는 일제공~삼제공의 외부는 앙서형이고 내부는 모두 교두형으로 처리되었으며, 사제공(四提貢)은 내부만 교두형으로, 외부는 초제공보다는 좀 심한 앙서형이다. 또한 오제공에서는 내외를 초각시키고 있음을 볼 때 살미의 치목 수법은 하대로 내려오면서 장식화 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부산 범어사 대웅전은 조선 후기 건물이지만 쇠서의 형태로 보아 비교적 이른 시기의 공포 형식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다포계 건물에서 후면 공포의 형태를 전면에 비해 의장을 생략한 간략한 형태로 구성하는 것은 공포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시각적 구성의 위계를 두는 것으로, 이와 같은 경향은 조선 중기 이후에 점차 확산되어 조선 후기 다포계 건축물의 일반적인 특성이 되었다. 영남 지역의 다포계 맞배 건물들 중에서 청도 대비사 대웅전(淸道大悲寺大雄殿), 청도 대적사 극락전(淸道大寂寺極樂殿), 성주사 대웅전(聖住寺大雄殿), 용화사 보광전(龍華寺普光殿), 운흥사 대웅전(雲興寺大雄殿) 등이 모두 후면에는 주간포(柱間包)가 없거나 공포의 출목 수가 줄어들거나, 또는 주간(柱間)에 화반(花盤)만 짜서 올린 경우이다. 이에 비해 부산 범어사 대웅전은 정면과 후면에 모두 동일한 공포가 배열되어 있다. 공포의 배치에 있어서도 조선 중기 건물의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에는 다포계 맞배집의 가구 수법을 잘 반영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즉 다포계 맞배집의 가구법 가운데 특징적인 것의 하나가 측벽과 내부 가구 간의 수평 연결 부위에 2중 장여를 사용함으로써 상부의 하중과 횡력을 분담하는 것이다. 2중 장여는 중도리 또는 종도리 장여의 하부에 이를 보강하기 위한 또 하나의 뜬 장여를 두는 경우이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에도 양 측벽의 내목도리와 중도리 하부에 2중 장여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부산 범어사 대웅전의 특징 중 하나로 전면 귀기둥의 장초석(長礎石) 배치를 들 수 있다. 영남 지역 다포계 맞배집 주 불전 중에는 성주사 대웅전의 후면 좌측 귀기둥에 장초석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유일하다. 부산 범어사 조계문(釜山梵魚寺曹溪門)이 일반적인 일주문(一柱門)과 달리 4개의 장초석을 세우고 그 위에 짧은 기둥을 세운 것과 같은 의도로 생각된다. 또한 부산 범어사 대웅전 기단(基壇) 양측 계단의 소맷돌 조각 수법은 통도사 금강계단(通度寺金剛戒壇)의 계단 소맷돌과 유사한 형식을 보인다.

[위치]

범어사의 입구 삼문(三門)을 지나면 높은 계단 위에 범어사 보제루(梵魚寺普濟樓)가 있고, 그 뒤로 삼층 석탑과 석등이 세워져 있는 안뜰이 있다. 안뜰의 북쪽으로 높은 석축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 위에 부산 범어사 대웅전이 위치한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의 입지는 산지 사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변천]

부산 범어사 대웅전의 초창(初創)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을 맞아 소실되었다. 이후 1602년(선조 35)에 다시 지었으나 곧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1613년(광해군 5)에 묘전 화상(妙全和尙)이 승려 해민 등과 함께 중창하였다. 그 뒤 1713년(숙종 39)에 승려 흥보가 주관하여 중건하고 단청하였는데, 이때 도대목(都大木)은 승려 조헌, 지총, 치백이었으며, 화원(畵圓)은 승려 영백, 치감, 사인, 건운, 명준이었다. 1720년(숙종 46)에는 승려 대준, 우화, 처환, 처운이 편수(片手)가 되어 석계(石階)를 수리하고 불상을 개금(改金)하였다. 이후 1814년(순조 14)에 기와를 새로 얹었으며, 1871년(고종 8)에 단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부산 범어사 대웅전의 조영(造營)은 전적으로 부산 지역 사찰의 승인 공장(僧人工匠)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다포식 건물이면서 맞배지붕을 올린 점은 사찰의 주 불전 건물로서는 이례적인 모습이다. 기단은 면석과 갑석을 갖추었고, 양 측면과 후면은 장대석 외벌대 기단으로 마감하였다. 기단의 동쪽 끝에 있는 면석에 ‘강희 19년’이라는 명문 기록이 있어 1680년(숙종 6)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단 중앙에는 석계를 놓고 좌우에 소맷돌을 놓았는데 연화문(蓮花紋)이 조각되어 있다. 기단의 각 면석에는 4엽의 모란문이 양각되어 있다. 초석은 자연석 초석으로 기둥뿌리를 원형으로 다듬어 기둥을 세웠는데, 전면 귀기둥의 초석 위에는 다시 둥근 돌기둥 모양의 장초석을 세워 짧은 두리기둥을 받쳤다.

건물 전면에는 창호(窓戶)를 달았는데, 중앙 어간(御間)에는 사분합 빗살문을 달고, 좌우 협간(夾間)에는 삼분합 빗살문을 달았다. 좌우 측면에는 외여닫이문을 달고 뒷면 각 칸에는 두 짝의 격자 살문을 달아서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둥은 민흘림의 원주(圓柱)이며, 기둥머리는 창방(昌枋)으로 결구되어 있다. 그 위에 다시 평방(平枋)을 놓고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놓은 다포식 구조를 이루고 있다.

공포는 어간에 3구의 주간포를, 좌우 협간에는 2구씩의 주간포를 배치하였으며 공포 사이의 간격은 거의 같다. 공포는 앞·뒷면에만 짜고 측면에는 주두(柱頭) 아래 창방 뺄목을 첨차로 만들어서 장여와 도리의 뺄목을 받쳤다. 공포의 구조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제공의 살미는 끝이 직절(直切)된 앙서로 되어 있다. 다만 제4제공은 끝이 날카로운 앙서로 표현하였으며, 그 위에 보머리를 둥글게 파련 초각해서 장여와 결구하여 외목도리를 받게 하였다. 내부 살미는 끝이 모두 교두형으로 표현되어 있다. 주두와 소로는 경사지게 절단하고 행공 첨차는 아무런 치장이나 초각 없이 직절(直截)하여 배 모서리만 약간 둥글린 교두형으로 만들었다.

가구(架構)는 전면의 평주(平柱)와 내진(內陣)에 세운 2개의 고주(高柱)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동자주(童子柱)를 세워 중종보를 걸고 다시 그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건 3중량(三重樑) 구조이다. 양측 벽의 내목도리와 중도리 하부에는 2중 장여를 사용하였으며, 종보 밑에는 우물천장을 가설하고 양 측면 고주와 앞뒤 공포 끝부터 빗천장을 가설하였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浮椽)이 있는 겹처마이며, 양측 박공(牔栱) 면에는 방풍판(防風板)을 달았다. 건물 내부에는 2개의 내진 고주와 대들보 사이에 보개 천장(寶蓋天障)을 배치하고 그 아래에 불단을 마련하였는데, ‘亞’ 자형 평면에 다포식 공포를 갖춘 보개(寶蓋)는 운룡(雲龍), 서조(瑞鳥), 비천상(飛天像) 등을 조각하여 장식하였으며, 불단에는 다양한 화문과 비천상을 화려하게 조각하고 장식하였다.

[현황]

부산 범어사 대웅전은 1966년 2월 28일 보물 제43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산 범어사 대웅전은 17세기 무렵의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로 주목된다. 다포식 공포를 짜고 맞배지붕을 올린 점은 큰 규모의 불전 건물로서는 특이한 예이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과 같이 다포식 건물에 맞배지붕을 올린 경우는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慶州祇林寺大寂光殿), 청도 대비사 대웅전, 청도 대적사 극락전, 성주사 대웅전, 성흥사 대웅전(聖興寺大雄殿), 양산 신흥사 대광전(梁山新興寺大光殿), 용화사 보광전(龍華寺普光殿), 운흥사 대웅전, 김해 은하사 대웅전(金海銀河寺大雄殿) 등 영남 지역 사찰의 주 불전에서 몇몇 사례가 나타난다.

다포계 맞배지붕집을 대표하는 부산 범어사 대웅전은 조선 전기 건물들과는 달리 중첩판 방식을 짠 제공에 강직한 형태의 쇠서를 달았다. 또한 시기가 더 하강하는 건물들에서 전면의 공포와 후면의 공포가 일치하지 않는 예가 많음에 비해 전면과 후면의 공포 형식이 동일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부산 범어사 대웅전은 조선 후기의 건물이면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중건되었음을 잘 알 수 있다. 한편 양 측벽의 내목도리와 중도리 하부에는 2중 장여를 사용하여 다포계 맞배지붕집에서 나타나는 가구 수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외에도 전면 귀기둥의 장초석 배치라든가 청도 대적사 극락전, 통도사 금강계단과 같이 기단부의 면석과 계단 소맷돌에 문양을 장식한 것 등에서 건축가의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는 건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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