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84 |
---|---|
한자 | 金槿濟 |
영어음역 | Gim Geunje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샘길 14[대청동 1가 1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용태 |
[정의]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사학 재단인 남성학원·국성학원·훈성학원·한성학원 등을 운영한 교육 사업가.
[가계]
김근제(金槿濟)는 1921년 7월 13일 경성대학교를 설립한 부산의 대표적인 사학 운영자이자 기독교 목사인 김길창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김근제가 태어난 곳은 부산광역시 서구 부용동 2가 40번지라고 알려져 있으나, 호적에는 경상남도 마산시 신정동 7번지로 기재되어 있다. 큰아들 김대성은 현 경성대학교 총장 및 한성재단 이사로서, 김근제의 사망 이후 남성학원·국성학원·훈성학원·한성학원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활동 사항]
김근제는 어린 시절 아버지 김길창 목사의 임지가 자주 바뀌었기 때문에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자주 옮겨 다녔다. 1939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한 김근제는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대학(明治大學) 전문부 법학과를 다니다가 1941년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 문학부 철학과에 들어가 인문학을 공부하였다. 이 무렵 김길창 목사가 부산에서 흥아여자상업실무학교[현 남성여자고등학교 및 남성여자중학교]를 설립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후진 양성과 육영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해방 직전 귀국한 김근제는 불과 24세의 젊은 나이에 흥아여자상업실무학교를 이어받아 교장에 취임하였다.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 김근제는 학교의 명칭을 남조선고등여학교로 바꾸고 학교 운영에 필수적인 법적·행정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동아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한 발 더 나아가 선진국의 교육상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195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였다. 이처럼 김근제는 법학, 인문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습득함으로써 교육자로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 사이 남조선고등여학교는 6년제 남성여자중학교로 학제와 교명을 바꾼 후 6·25 전쟁 기간에 남성여자고등학교와 남성여자중학교로 분리되었다.
6·25 전쟁 이후 늘어난 부산의 인구에 비해 학교가 부족한 현실에서 김근제는 사학의 역할을 강조하며 학원을 점차 확장하였다. 김근제는 아버지 김길창과 함께 남성학원 외에 대동학원, 국성학원, 훈성학원, 한성학원 등의 학교 법인을 설립하여 1949년 대동중학교, 1952년 광성공업고등학교[현 경성전자고등학교], 1958년 훈성여자중학교[현 계성정보고등학교 및 계성여자중학교], 1965년 대동고등학교를 차례로 개교하고 교장이 되었다.
이후 김근제는 중등 교육뿐만 아니라 초등 교육과 고등 교육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1962년 부성초등학교[현 남성초등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이 되었는데, 남성초등학교는 당시 부산에서는 보기 드문 사립 초등학교로 부잣집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로 유명하였다. 또한 1960년에는 김길창이 1955년 설립한 경남사범대숙의 학장에 취임하였고, 이후 1963년에 경남사범대숙이 한성여자실업초급대학으로 개편되자 초대 학장이 되었다. 이 학교는 이후 부산산업대학을 거쳐 지금의 경성대학교가 되었다.
김근제는 1960년대 부산시사립중고등학교장회 회장과 부산시중등교육회 회장을 지냈으며, 매스컴의 공익성과 공정성을 주장하며 1964년 『대한 일보』 부산지사장, 1973년 『한중 일보』 사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김근제는 1978년 4월 2일 사망하였는데, 그가 설립하고 운영한 사학 재단은 큰아들 김대성에게 상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