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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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營區-文化遺産 |
영어의미역 | Cultural Heritages in Suyeong-g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
시대 | 선사/선사,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신명호 |
[정의]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부산광역시 수영구의 주요한 문화유산.
[개설]
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해운대구의 청사포와 좌동 신시가지 개발 지역에서 구석기 유물이 채집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수영구의 경우도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가 발견된 경우는 없다. 수영구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간 돌검[마제 석검]이 좌수영 성지(左水營城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8호]에서 출토된 예가 일제 때 우메하라 스에하루[梅原末治]에 의해 보고된 바 있다. 따라서 수영구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에 사람이 거주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밖에 다른 유적과 유물은 보고되지 않았는데, 급격한 도시화로 유적과 유물이 파괴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수영구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이후 철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 등은 아직 조사 보고된 바가 없다. 그렇다고 수영구 지역에 고고학적으로 철기 시대, 문헌적으로 삼한·삼국 시대 초기에 사람이 전혀 살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시기에 수영구 지역은 독로국(瀆盧國) 소속으로 부산 복천동 고분군(釜山福泉洞古墳群)[사적 제273호]의 세력이나 연산동 고분군(蓮山洞古墳群)[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호] 세력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야 지역이 신라에 편입된 이후부터 남구를 비롯한 부산 지역은 거칠산군(居漆山郡)으로 편제되어 하나의 독립된 국(國)에서 신라의 지방 군현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역사의 변천에 따라 통일 신라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부산의 토착적인 전통문화에는 불교문화, 유교 문화 등이 결합되었다. 그 결과 수영구 지역에서도 토착 문화와 유입 문화가 결합된 다양한 문화유산이 창출되었다.
[주요 문화유산]
2011년 현재 수영구에는 천연기념물 2종,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 문화재 2종, 부산광역시 지정 무형 문화재 1종,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3종, 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 자료 1종 등 총 9종의 문화유산이 있다. 이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된 정과정 유적지(鄭瓜亭遺蹟址)이다.
1. 정과정 유적지
수영구 망미2동 산6-2번지에 위치하는 정과정 유적지는 고려 시대 문인인 과정(瓜亭) 정서(鄭敍)가 유배 생활을 할 때 정자를 짓고 오이밭을 일구며, 임금을 그리워하는 고려 가요인 「정과정곡(鄭瓜亭曲)」을 지은 곳이다. 조선 시대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동래부지(東萊府誌)』 등에 의하면 정과정(鄭瓜亭)은 동래부(東萊府) 남쪽 1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자는 없으나 그 터는 남아 있다고 하였다.
이 기록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정과정의 현재 위치는 수영강 변을 따라 수영 하수 처리장에서 고려제강에 이르는 지역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이 일대 대부분은 개발 등으로 인해 원래의 지형을 찾기 어려우며, 수영구 망미2동 산6-2번지의 약 3,966.94㎡[약 1,200여 평] 정도만이 본래의 모습을 간직한 녹지로 남아 있다. 이곳은 용두곶이라는 바위가 있고, 보호수 한 그루와 1984년 토향회에서 건립한 정과정 시비(鄭瓜亭詩碑)가 있는 등 자연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정서는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오웅건내’를 건너서 오이밭을 일구었으며, 또한 이곳에서 망산에 올라가 임금이 있는 개경을 바라보며 배산 쪽을 향해 임금에게 잔을 바쳤다 하여 배산(背山)을 배산(盃山)이라 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정서는 고려 시대의 문인으로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과정으로 생몰년은 미상이다. 정서가 유배지인 동래에서 지은 가요인 「정과정곡」은 『고려사(高麗史)』 악지에 제작 동기와 함께 실려 있으며, 이제현의 해설시가 같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말 노래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전한다. 「정과정곡」은 우리말로 적혀 있는 고려 가요 가운데 유일하게 작자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유배지에서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을 절실하고 애달프게 노래하였다 하여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 때문에 궁중의 속악 악장으로 채택되어 기녀는 물론 사대부 간에도 학습의 대상이 되었다.
2. 조선 시대 좌수영과 관련한 문화유산
수영구의 정과정 유적지를 제외한 나머지 문화유산은 주로 조선 시대의 좌수영에 관련된 문화유산이다. 부산 좌수영 성지 곰솔[천연기념물 제270호], 부산 좌수영 성지 푸조나무[천연기념물 제311호], 수영성 남문(水營城南門)[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7호], 「수영 농청 놀이」[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2호], 좌수영 성지, 25의용단(二十五義勇壇)[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2호] 등 6종이 직간접으로 좌수영에 관련되어 있다.
경상 좌수영(慶尙左水營)은 조선 건국 후 부산포에 설치되었다가 울산 개운포(開雲浦)로 옮겨졌다. 임진왜란 직전에 경상 좌수영은 울산 개운포에서 동래 해운포로 옮겨졌고, 임진왜란 후인 1636년(인조 14)에 감만포로 옮겨졌지만, 16년 후인 1652년(효종 3)에 다시 동래 해운포 즉 오늘날의 수영구 수영동으로 옮겨졌다. 이후 1895년(고종 32) 7월 군제 개편으로 경상 좌수영이 혁파되기까지 약 240여 년간 수영구 수영동에 자리하였다. 이처럼 오랫동안 좌수영이 수영구에 있었기 때문에 수영구에는 좌수영에 관련된 문화유산이 다양하게 남게 되었다.
1)국가 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제270호로 지정된 부산 좌수영 성지 곰솔은 수영구 수영동 229-1번지에 있는 소나뭇과의 식물로, 잎이 소나무보다 억세기 때문에 곰솔이라 불린다. 소나무의 겨울눈은 붉은색인데 반해 곰솔은 회백색인 것이 특징이다. 바닷가를 따라 자라기 때문에 해송으로도 불리며, 또 줄기 껍질의 색이 소나무보다 검다고 해서 흑송이라고도 불린다. 부산 좌수영 성지 곰솔은 수령이 400년 정도로 추정되며 크기는 높이가 23.6m, 둘레가 4.5m로 현재 수영 공원 안에 서 있다. 땅에서부터 가지가 갈라지는 부분까지의 길이는 7m이며, 껍질은 거북의 등처럼 갈라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시대 좌수영의 병사들은 부산 좌수영 성지 곰솔을 자신들을 보호해 주고 지켜 주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 곰솔에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곰솔 옆에는 신을 모셔 놓은 당집과 장승이 서 있고, 앞쪽에는 곰솔 한 그루가 더 있다.
천연기념물 제311호로 지정된 부산 좌수영 성지 푸조나무는 수영구 수영동 271번지에 있는 나무로서 바닷바람을 막아 주는 방풍림에 적당하다. 푸조나무는 팽나무와 비슷해서 곳에 따라서는 개팽나무 또는 검팽나무로 불린다. 수령이 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부산 좌수영 성지 푸조나무는 마을을 보호해 주는 신으로 섬겨지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나무에 할머니의 넋이 깃들어 있어 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2)부산광역시 지정 문화재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수영성 남문, 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수영 농청 놀이」, 그리고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좌수영 성지,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25의용단은 조선 시대의 경상 좌수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문화유산이다.
수영성 남문과 좌수영 성지는 좌수영성(左水營城) 건물과 관련된 문화유산이고, 25의용단은 좌수영성에서 있었던 임진왜란과 관련된 문화유산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 좌수사 박홍(朴泓)은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이때 좌수영에 남아 있던 수군과 성민 25명이 성문 밖의 선서 바위에 모여 피로써 맹세한 후, 바다와 육지에서 적을 상대로 7년간 대항하였다. 이러한 사연이 1609년(광해군 1)에 지방민들의 청원으로 조정에 알려지자, 당시의 동래 부사 이안눌(李安訥)이 이때의 일들을 모아 『정방록(旌傍錄)』을 편찬하고, 이들의 집 문에 ‘의용(義勇)’이라는 두 글자를 써 붙여 그들의 충절을 기렸다. 이후 1853년(철종 4)에 경상 좌수사 장인식(張寅植)이 비석을 세우고 ‘의용단’이라 이름 붙였으며, 제실을 설치하여 봄과 가을 두 차례 제사를 지냈다.
「수영 농청 놀이」는 좌수영 주변의 농민 문화와 관련된 문화유산이다. 조선 시대 좌수영에서는 ‘농청’이라는 자치 단체를 만들어 농민들의 기술 향상과 협동심을 높여 생산 증진을 도모하였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라 농청의 풍습뿐만 아니라 그에 따르는 농요도 사라지게 되자 수영구의 농청원들이 농악을 치고 농요를 부르며 농사짓는 과정을 놀이화하였다.
「수영 농청 놀이」는 집합 신호에 의해 모인 농청원들이 농기, 농악대, 소, 농부들, 부인들 순으로 정렬하면서 남녀 두 사람이 차례로 풀 노래를 부르고, 일동은 농악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며 일터로 상징되는 놀이마당으로 들어간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 맞추어 가래 소리, 모찌기 소리, 모심기, 도리깨 타작 소리 순으로 모심기가 끝나면 남자 농청원들이 논매기를 한 뒤, 동서로 나누어 소싸움을 붙이고 칭칭 소리를 하며 한바탕 놀다가 퇴장한다.
3. 그 밖의 문화유산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7호로 지정된 마애 지장보살 좌상(磨崖知藏菩薩坐像)은 불교와 관련된 문화유산이고,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된 「자수책거리 병풍」은 유교와 관련된 문화유산이다. 마애 지장보살 좌상이 있는 수영구 백산의 정상부는 첨이대(覘夷臺)가 있는 등 남해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일 뿐 아니라,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사명 대사(泗溟大師)와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