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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391
한자 二十五義勇壇
영어의미역 Stone Altar for 25 Heroes during the Hideyoshi invasion of Korea
이칭/별칭 이십오의용단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연수로379번길 42[수영동 366]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강식진상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853년연표보기 - 25의용단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4년연표보기 - 부산시에서 비석단 3개, 비석 25기 복원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1년 3월연표보기 - 부산광역시와 수영구청에서 의용사,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72년 6월 26일연표보기 - 25의용단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25의용단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수영 사적 공원 - 부산광역시 수영구 연수로379번길 42[수영동 366]지도보기
원소재지 수영 사적 공원 - 부산광역시 수영구 연수로379번길 42[수영동 366]지도보기
성격 제단
면적 보호구역 5,531㎡
소유자 부산광역시 외
관리자 부산광역시 수영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좌수영성(左水營城)에서 일본군에 저항한 25인을 기리는 제단.

[건립 경위]

임진왜란 때 좌수영의 수군과 성민 등 25인은 죽기를 각오하고 일본군과 싸우기로 결의하였다. 그들은 7년 동안 유격전으로 일본군에 대항하다가 순절하였다. 이후 1609년(광해군 1) 동래부사 이안눌(李安訥)이 지방민의 청원에 따라 25명의 사적을 수집하여 『정방록(旌滂錄)』에 싣고, 그 집의 문에 의용(義勇)이라 써 붙인 데서 의용단이라는 명칭이 비롯되었다. 순조(純祖) 때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역(役)을 면제해 주고, 글을 지어 표창하였다. 1853년(철종 4)에는 경상좌수사 장인식(張寅植)이 지금의 수영 사적 공원 자리에 의용제인비(義勇諸人碑)를 세워 경상좌수사 장인식(張寅植)이 글을 짓고 승지(承旨)를 지낸 이형하(李亨夏)가 글씨를 썼으며 첨정(僉正) 백채현(白采絢)이 감독을 맡아 건립하였다. 이를 의용단이라 칭하고, 재실(齋室)을 지어 ‘의용당(義勇堂)’이란 현판을 붙여 매년 음력 3월과 9월 정일(丁日) 두 차례에 걸쳐 제향을 봉행하였다.

[위치]

25의용단부산광역시 수영구 연수로379번길 42[수영동]에 있는 수영 사적 공원 안에 위치한다.

[형태]

돌로 바닥을 만들고, 세 면에 제단을 쌓았다. 비의 크기는 높이 159㎝, 너비 60㎝, 두께 24.5㎝이다.

[현황]

1895년(고종 32) 군제 개혁으로 좌수영이 폐지되자, 수영면의 면장이 제사를 주관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면장이 부임한 이후에는 수영기로회(水營耆老會)에서 제향을 주관하여 밤에 제사를 지냈다. 광복 후 수영고적민속보존회가 제사를 주관하면서부터는 기존의 민간 제사 의식을 「충렬사 제향」과 같은 의식으로 고쳤다. 그 후 ‘수영25의용충혼숭모봉사위원회’가 결성되어 제사를 주관하고 있다.

1974년 부산시에서 25의용단의 경내 정화 공사를 하여 비석단 3개, 비석 25기 건립하였다. 2001년 3월에는 부산광역시와 수영구에서 재차 정비 사업을 벌여 사당인 의용사(義勇祠),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등을 건립하고, 경역도 확장하여 지금의 규모로 정비하였다.

의용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이다. 의용사에는 의용제인비와 25명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좌우로 배열되어 있다. 왼쪽에는 정인강, 최송엽, 최수만, 박지수, 김팽량, 박응복, 심남, 이은춘, 정수원, 박림, 이수, 신복의 이름을 새긴 비석이 중앙을 향해 나란히 서 있고 오른쪽에는 김옥계, 이희복, 최한연, 최한손, 최막내, 최끝량, 김달망, 김덕봉, 이실정, 김허롱, 주난금, 김종수, 김진옥의 이름을 새긴 비석이 중앙을 향해 나란히 서 있다. 1972년 6월 26일에 의용제인비를 모신 단을 지칭하는 25의용단이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25의용단은 임진왜란 때 경상좌수영성을 지키다 순절한 군인과 민간인 25명의 충렬을 기리는 부산의 주요 문화재이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좌수영성에서 일본에 저항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사람들에게도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는 사후에도 표창하였음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6.27 오탈자 수정 현황 오탈자 수정
2021.03.24 현행화 1895년(고종 32) 군제 개혁으로 좌수영이 폐지되자, 수영면의 면장이 제사를 주관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면장이 부임한 이후에는 수영기로회(水營耆老會)에서 제향을 주관하여 밤에 제사를 지냈다.
이용자 의견
박** 수영구의 있는 25의 용단은 우리가 잘 지키고 잘 보존 해야 합니다.
  • 답변
  • 부산역사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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