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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군의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25
한자 機張郡-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in Gijang-gu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씨 세거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있는 성씨 세거지.

[개설]

기장군은 선사 시대부터의 오랜 거주 역사를 알 수 있다. 이 지역의 행정명도 갑화양곡현, 기장군, 기장현 등으로 개칭되면서 양주와 울산 등지에 속하였다가 1995년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또 기장군은 동쪽은 동해와 접하고 나머지 면은 모두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그 산지가 뻗어 내리면서 다양한 하천을 함께 이루고 바다 쪽으로는 높이 90∼100m 대지(臺地)형 지형을 이루어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지형을 만들었다.

[형성과 변천]

기장 지역에 세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다. 입향하는 계기는 대개가 전란을 피하거나 또는 새로운 삶을 위하여 오는 경우였다. 특히 이곳에 가장 중요한 개문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기장 향교(機張鄕校) 재건에 큰 도움을 주었던 ‘8가 13인’이라고 한다. 철마의 김해 김씨(金海金氏), 광산 김씨(光山金氏), 해주 오씨(海州吳氏)정관읍영월 신씨(寧越辛氏), 밀양 손씨(密陽孫氏), 일광읍의 동래 정씨(東萊鄭氏), 청도 김씨(淸道金氏), 기장읍차성 이씨(車城李氏)를 가리킨다. 이들 성씨는 대개 임진왜란 이전부터 기장 지역에 세거하면서 이곳의 토성으로 활약하였다.

1934년에 발행된 『조선의 성(姓)』의 ‘동래군’ 조에는 당시 동래 지역에 존재하던 45개 지역의 집성촌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집성촌은 1개 동리에 15가구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을 전수 조사하여 기록한 것으로, 당시 동래 지역의 인구 분포 및 세거 성씨 현황을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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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기장 지역의 성씨 세거 상황은 다음과 같다[이하 표는 필자가 만듦].

1. 철마면 세거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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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광면 세거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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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안읍 세거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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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관읍 세거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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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보듯 기장 전 지역의 세거 성씨는 매우 다양하다. 또한 그 일부는 아직까지 많은 성씨가 집성촌을 지키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앞서 언급한 1934년에 만들어진 『조선의 성』의 세거지 형태를 거의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기장 지역도 도시 개발 과정에 있다. 특히 정관 지역은 정관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거의 모든 성씨 세거지가 해체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점은 인근 지역도 마찬가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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