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1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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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A Seaside Villag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국명 |
[정의]
1953년에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학리 학리항을 배경으로 창작하여 『문예』에 발표한 오영수의 현대 소설.
[개설]
부산·경상남도가 배출한 대표적 소설가인 난계 오영수(吳永壽)[1909. 2. 11~1979. 5. 15]는 경상남도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 313번지에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의 나니와중학[浪速中學]을 거쳐 동경국민예술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고향인 경상남도 울주군의 언양 지역에서 청년 회관을 열어 역사와 한글을 지도하는 등 계몽 운동을 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청년 회관이 폐쇄되자 만주 등지를 방랑하였다.
해방 후 부산 지역에서 교편생활을 하면서 「남이와 엿장수」[「고무신」으로 개제]를 발표하고, 1950년 『서울 신문』 신춘문예에 「머루」가 입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들어갔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종군 작가로 참전하였다.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조연현 등과 『현대 문학』을 창간하고 편집장을 맡기도 하였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이주한 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나, 1979년에 단편 소설 「특질고」로 필화를 겪은 후 큰 충격을 받았고, 향연 71세로 타계하였다.
오로지 단편 소설에만 몰두한 오영수는 15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오영수의 작품이 현실에 대한 관심을 결여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오영수 소설의 근본 방향은 이념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와 자연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많은 연구자가 지적하듯, 오영수의 소설은 훼손되지 않은 원시적 삶의 건강성, 소박하고 낙천적인 인간상,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인간성 회복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추구한다. 오영수는 「박학도」로 제1회 한국문학가협회상을, 「메아리」로 제7회 아세아 자유 문학상을 받았다.
이러한 오영수의 문학적 성취와 정신을 기리기 위해 울산매일신문사에서 1993년부터 ‘오영수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울산광역시와 울주군은 오영수의 문학 혼을 기리기 위하여 오영수의 고향인 경상남도 울주군의 언양 지역에 오영수 문학관을 건립하였다. 오영수 문학관은 2013년 2월에 착공하여 2014년 1월에 정식 개관하였다.
「갯마을」은 1953년 『문예』 12월 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1956년에 중앙문화사에서 출간한 『갯마을』에 수록되어 있다. 1989년에 책세상에서 출간한 『갯마을-오영수 대표 단편 선집』에도 수록되어 있으며, 또한 1965년에는 영화감독 김수용에 의해 흑백 영화로 제작되었다.
[구성]
「갯마을」의 시간적 배경은 조선 청년들을 징용과 징병에 강제 동원한 일제 말기이고, 공간적 배경은 H라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3인칭의 객관적 관점을 유지한 「갯마을」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한데, 이는 간결한 구성을 선호한 오영수 특유의 작법이 잘 반영된 결과이다. 작품의 서두와 종지부는 귀향한 해순이 멸치 후리에 나서는 장면을 보여 주고, 그 내부는 성구와의 결혼, 상수의 끈덕진 유혹과 재혼, 상수가 없는 산골 생활을 버리고 고향 마을로 돌아오는 과정을 담고 있다.
[내용]
보재기, 즉 해녀의 딸인 해순은 19세에 성구에게 시집을 간다. 그러나 고등어잡이를 위해 원양 출어에 나섰던 성구는 폭풍을 만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생업을 위해 물질에 나선 해순에게 상수는 끈덕지게 구애를 하고, 해순은 상수와 함께 육지 살림을 하기 위해 고향 바다를 떠난다. 그러나 상수가 징용에 끌려간 뒤 적막한 산골 생활을 견디지 못한 해순은 그리운 고향 바다로 돌아와 멸치 후리꾼으로 나선다.
[특징]
「갯마을」의 무대가 되는 H 갯마을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일대로 여겨진다. 「갯마을」의 특징은 첫째, 지역민들의 건강한 삶을 생동감 있게 그려 낸 데 있다. 원양 출어에 나선 남정네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상수와 같은 젊은 사내들이 징용에 끌려가는 등 지역 주민들이 직면하는 현실은 비극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이들은 낙천적인 품성으로 현실을 이겨 낸다.
두 번째 특징은 현대의 과학적 지식보다 지역의 자연에 참여하고 조화함으로써 얻은 지역 지식과 신념을 드러내는 데 있다. 풍어제와 같은 민속 신앙은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지역 지식이며, 마을 원로들이 원양 출어한 배의 비극을 예견한 것도 이런 지역의 장소 체험에 근거한 지식의 하나이다. 세 번째 특징은 지역의 방언이나 토속적 어휘를 잘 부려 썼다는 데 있다. 멸치 철이 되면 ‘후리막’에서 보내는 신호에 따라 그물을 당기는 ‘후리꾼’, 그 일의 대가로 받는 ‘짓’ 등의 지역 말이 그 증거이다.
[의의와 평가]
「갯마을」에서 일제 말기라는 역사적 시간은 먼 배경 속에 놓이고, 두 번이나 남편을 잃은 청상답지 않게 해순의 마음에도 어두운 그늘은 없다. 해순의 이런 삶의 태도가 인생의 역경에 대한 무지한 결과라거나 생래적인 낙천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을의 ‘떼과부’처럼 해순이 역시 상실의 상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멸치 후리가 협동적 노동인 것처럼, 해순과 이들 과부들은 공동체적 삶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 해순이 외롭고 적막한 산골 생활을 견디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에 돌아오지 못하는 남정네들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듯, 이들은 같은 생각과 느낌을 함께하고 고통스러운 삶에 관한 서사를 공유한다.
해순을 포함한 주변부 인간은 지도자에게 의존하거나 자신의 외부에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 온 집단과의 관계를 통해 삶의 해법을 구한다. 공동체적 삶이라면 우리의 삶이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향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 타인과 관계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음을 암시한 데 「갯마을」의 특별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