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57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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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Lotte Giants |
이칭/별칭 | 롯데,자이언츠,거인,갈매기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로 45[사직동 930-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오륜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에 있는 부산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팀.
[설립 목적]
롯데 자이언츠는 1982년 우리나라 야구의 대들보라고 할 수 있는 실업 야구의 위상이 고교 야구나 대학 야구에 비하여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 야구를 중흥시키기 위하여 대기업을 중심으로 지역별 연고제를 채택한 프로 야구를 창설하자 부산 지역의 야구단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롯데 자이언츠는 1975년 7월 실업 야구단인 아마 롯데 야구단으로 출범하여, 1976년 한국 시리즈 우승 등 3회의 우승과 3회의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1982년 2월 12일 프로 야구단으로 출범하였으며, 4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를 창립하였다. 초대 감독으로는 실업 야구 시절 아마 롯데 야구단을 우승시킨 박영길[코치 2명, 선수 18명]이 취임하였다.
2019년 현재 감독은 허문회가 맡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창단 당시부터 부산·경상남도 지역을 연고지로 삼았으나, 2011년 경상남도를 연고지로 한 NC 다이노스가 창단되면서 현재는 부산·울산 지역을 연고지로 두고 있다. 마스코트는 1993부터 2002년까지는 거인이었고, 2003년부터 갈매기로 변경하였다.
[주요 활동 사항]
1. 1980년대
1982년 3월 28일 부산에서 해태와 프로 야구 첫 경기를 14대 2로 대승을 거두며 우렁찬 출발을 알렸다. 당시 김용희, 김용철 등 쌍포를 비롯한 유두열, 김정수, 우경하, 김성관 등 막강한 타선을 자랑하였다.
1984년은 롯데 자이언츠의 첫 우승이라는 의미와 함께 한국 프로 야구사에 큰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우승의 기쁨보다 더 큰 의미는 최다 관중 팀이 우승을 차지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부산·경상남도 지역이 프로 야구 30년 내내 구도로 불리고, 최고의 프로 야구 팬이 꾸준히 열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의미 깊은 해로 평가된다.
82, 83시즌을 부진하게 보낸 강병철 감독이 이끈 롯데 자이언츠는 84시즌 전기 리그를 4위로 마치자 부산 팬들은 실망감을 유인물로 돌리는 등 팬의 힘을 과시하였다. 8월 초까지 5위권에 머물던 롯데는 선두와의 게임차가 얼마 나지 않아 8월 11일부터 시작된 부산 5연전에 승부수를 던졌다. 첫 경기에서 최동원과 임호균의 역투로 삼성을 5:3으로 승리, 이후 남은 4게임을 모두 잡아내며 1위로 올라섰다. 5연전에서 최동원은 4게임에 나서 2승 2세이브를 거두는 놀라운 투지를 보여 줬다.
이 때 보여 준 5연승과 최동원의 역투는 팀 우승의 시작점이었고, 팬들의 열광을 이끌어 낸 계기가 되었다. 이후 OB와 숨 막히는 순위 경쟁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1984년 최다 관중을 모은 롯데 자이언츠가 후기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삼성 라이온즈를 제치고 대망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다. 특히 최동원은 27승으로 다승 1위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탈삼진 223개의 대기록의 전설을 만들어 냈으며, 부산 팬들의 영원한 우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한국 시리즈는 유두열의 역전 3점 홈런과 최동원의 역투가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한국 시리즈 최고의 명승부이자 역전 드라마로 기록되고 있다.
2. 1990년대
1992년은 부산 야구의 전성기로, 역전 우승과 관중 120만을 돌파한 최고의 해로 평가된다. 강병철 감독이 이끄는 롯데 자이언츠는 페넌트 레이스에서 3위로 오른 뒤 삼성과 준 플레이오프, 해태와 플레이오프, 빙그레와 한국 시리즈를 차례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한국 시리즈에서는 시즌 7승만을 거뒀던 박동희가 2승 1세이브로 MVP를 차지하였다.
이때 우승의 원동력은 부산 팬들의 아낌없는 성원이었다. 연일 만원 관중이 사직 야구장을 찾았고,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롯데 선수들은 흥이 났고, 상대방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라운드에서 5명의 3할 타자[김민호, 김응국, 이종운, 박정태, 전준호]가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 줬다.
투수는 윤학길이 2년 연속 17승을 기록하였고, 고졸 염종석도 17승을 거둬 신인왕의 타이틀을 따냈다 젊은 코칭 스텝과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체질 개선에 주력한 결과 젊은 롯데로 탈바꿈하여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구단 역시 사직 야구장에 프로 야구단 최대 규모의 클럽 하우스와 웨이트 트레이닝장, 샤워 시설 등 당시 최고의 시설을 지원하였다.
1995년 시즌 가장 주목할 부분은 ‘김용희 감독식’ 실전 자율 야구가 꽃을 핀 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코칭 스텝과 더 젊은 선수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단점들을 보강하였으며, 짧은 시간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훈련 방법은 선수들의 집중력을 높여 자연스럽게 실전에 가까운 훈련이 될 수밖에 없어 코칭 스텝부터 신인 선수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움직이게 된 것이다.
김용희 감독식 훈련 방법은 정착 2년째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는 넘치는 파워를 보여 주었다. 공격에서 거포(巨砲) 마해영이 신인 8번째 전 경기 출장의 기록과 함께 이후 거인의 주로로 자리를 잡았다. 2년생 임수혁도 연타석 3점 홈런의 주인공이 되면서 공격의 세대교체를 알렸고, 정교한 타격의 김응국, 전준호, 공필성 등 3할대 타자들과 최상의 공격력을 보여 주었다.
투수력에서는 거인 마운드의 주력 부대 윤학길, 주형광, 염종석, 김상현 등에 박지철, 박부성, 장승익 등으로 이어지는 젊은 세력이 홈과 원정을 적절히 배분하여 마운드를 지켰다. 윤형배, 김상수, 염종석, 김상현 등이 방위 복무로 원정길을 나서지 못한 때문이다. 이러한 악전고투로 시즌 3위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플레이오프에서 LG를 상대로 승리하여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OB에 패하여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4년 뒤인 1999년 롯데 자이언츠는 시즌을 앞두고 롯데의 전력은 2년 연속 최하위 성적에 전력 보강도 거의 없어 전문가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지만 페넌트 레이스에서 줄곧 1위를 지켜 가는 이변을 일으켰다. 막판 한 경기를 아쉽게 놓쳐 드림 리그 2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였다. 주목할 것은 롯데의 승리가 이어지면서 팬들의 관심이 커져 평균 관중 1만 명의 시대를 다시 회복하였다는 점이다.
99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는 20세기 최고의 명승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2년 연속 최하위의 수모에 오기가 난 선수단은 주장 박정태를 중심으로 하나로 뭉친 강한 정신력과 집중력을 보이면서 부산 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장식하였다. 1승 3패로 막다른 길에 몰렸던 상황에서 3연승을 거두고 한국 시리즈로 달려간 과정은 ‘각본 없는 드라마’로 ‘살아 있는 스포츠의 참맛’ 등의 수없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한판 승부였다. 마지막 3경기 5, 6, 7차전 모두 6:5와 같은 점수 한 점 차의 승부에 마지막 7차전은 연장선까지 가는 혈전을 치룬 명승부였다.
3. 2000년대 이후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롯데 자이언츠가 3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전에 진출한 것은 21세기의 부산 야구의 부활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2008년에는 구단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로이스터 감독을 영입하여 구단의 분위기를 쇄신하였으며, 이러한 영향은 3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또한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응원 음반을 제작하였으며, 2008년 7월 27일 드디어 홈 관중 100만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3개월 뒤 9월 21일 130만 관중을 돌파함으로서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갱신하기도 하였다.
특히 북경 올림픽 야구 우승 기념 이벤트가 열렸는데, 대표팀에 선발되었던 롯데 구단 소속 7명이 인터뷰와 팬 사인회를 가져 롯데 자이언츠의 위력을 과시하였다. 정규 시즌 3위로 준 플레이오프전에 진출하여 4위인 삼성과 격돌하였으나 사직 구장에서 2패를 맛본 후 대구 구장에서도 6:4로 패함으로써 플레이오프전 진출이 좌절되었다.
2009년은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의 각종 광고 출연이 두드러져 본격적인 스포츠 마케팅이 야구에 도입되는 시기였다. 인기 연예인과 함께 광고에 출연하였고, 선수 브랜드 먹거리 6종이 출시되기도 하였다. ‘자이언츠 야구 박물관’을 사직 야구장에 개장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시즌 4위로 준 플레이오프전에 진출하였으나 두산에게 1승 3패로 무너지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다.
롯데 자이언츠의 2010년은 희망과 암운, 영광과 좌절, 연승과 연패, 예상 못한 활약과 불의의 부상 등이 복잡하게 얽힌 한 해였다. 부진했던 전반기의 최종 성적은 42승 3무 45패였다. 하지만 반전의 계기는 6월 4일 대구 삼성전에서 찾아왔고, 두산과의 6연전을 모두 쓸어 담으면서 구단 사상 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참가를 기정사실화하였다. 하지만 두산과의 준 PO는 실패로 끝났고, 로이스터 감독의 연임도 좌절되었다. 구단은 2011년 반드시 한국 시리즈 무대에 오른다는 각오로 양승호 신임 감독 체제를 출범시켰고, 황재균과 투수 고원준을 넥센으로부터 영입하는 대형 트레이드도 단행하였다.
2011시즌 양승호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영입한 롯데 자이언츠는 변화로 시즌을 맞았다. 타격이 내리막길을 탔던 가르시아를 퇴출시키고, 일본 프로 야구에서 뛰었던 노장 투수 브라이언 코리로 선발진을 보강하였다. 하지만 정작 페넌트 레이스가 시작되자 롯데는 총체적 부실에 빠졌다. 하락세를 이어 가던 롯데는 7월에 투·타가 완벽하게 완성되며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즌 종료 3일 전인 10월 4일 사직 홈구장 한화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SK의 추격을 뿌리치고 페넌트 레이스 2위를 확정하였다. 단일 리그가 시작된 1989년 이후 롯데가 페넌트 레이스에서 2위 이상 오른 것은 2011년이 처음이었다. 그 후 롯데는 SK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승 3패로 한국 시리즈 진출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FA로 정대현과 이승호를 영입하여 2012시즌의 기대감을 높였다. 2012년에는 4위의 기록을 세웠고, 감독을 김시진으로 교체하였다. 2014시즌 후 김시진에서 이종운으로 감독을 교체하였다. 2015년 10월 8일 조원우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경기는 국내 KBO(Korea Baseball Organization)[한국야구위원회]를 중심으로 7구단과 19경기씩 총 133회를 진행하였다. 2013년 시즌부터는 9개 구단 체제로, 8구단과 16경기씩 총 128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유소년 야구의 발전을 위하여 1989년부터 매년 부산과 울산 지역 초등학교[리틀 야구단 포함]와 중학교 야구 대회를 운영 중이며, 2012년에는 부산·울산 지역 고교 야구팀이 참가하는 ‘제1회 롯데기 고교 야구 대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황]
2024년 현재 롯데 자이언츠는 대표이사 이석환, 단장 성민규, 감독 김태형 등을 비롯하여 코치 17명, 투수 39명, 포수 7명, 내야수 16명, 외야수 9명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 사직 야구장을 홈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롯데 자이언츠는 2012년까지 5년 연속 플레이오프전에 진출하는 쾌거를 거둠으로써 항도 부산의 대표적 프로 스포츠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홈경기에서 「부산 갈매기」가 울려 퍼지는 사직 야구장은 3만 명이 동시에 부르는 세계 최대의 노래 연습장이 되었다.
또한 선수마다 지어 준 로고송, 쓰레기 봉지와 신문지를 이용한 응원 문화, 원정 경기에서도 홈팀보다 더 큰 롯데 응원팀과 응원가, 1루를 견제하는 상대 투수에게 보내는 합창 “마!”, 관중석에 떨어진 공을 아이에게 양보하라는 멘트 “아주라!”와 같은 응원 문화와 야구 문화를 탄생시켜 부산이 야구의 1번지임을 여실히 보여 준다. 따라서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부산 시민의 야구 사랑 문화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람 스포츠 문화로 승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