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2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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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土壁會 |
영어공식명칭 | Tobyeokhoe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섭 |
[정의]
부산 지역 최초의 미술 그룹.
[설립 목적]
6·25 전쟁 시기에 전국의 화가들이 부산에 모여들었고, 중앙 화단과 교접한 이후 부산 화가들은 자신의 지역적 정체성과 미술 이념을 분명히 하고자 하였다. 즉 광복 이후 부산 미술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미술 제작을 위한 근본적인 고민과 생각을 나누기 위하여 토벽회를 설립하였다. 토벽회의 토벽은 ‘토박이’라는 의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부산 지역 거주 작가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김경의 향토색 나는 작품과 관련하여 ‘흙담’의 한자어라고 하기도 한다.
[변천]
1953년에 김경과 임호가 주축이 되고, 서성찬, 김영교, 김종식, 김윤민이 참여하여 토벽회를 결성하였다. 1954년 제3회 전시회를 끝으로 해산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토벽회 창립전은 1953년 3월 22일부터 그해 3월 29일까지 부산 시내의 ‘루네쌍스 다방’에서 서성찬, 김영교, 김윤민, 김종식, 임호, 김경 등 6명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때는 6·25 전쟁 중이었는데, 창립 멤버인 김종식은 창립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그때 창립전을 어디에서 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어려운 시기에 전시회를 어떻게 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의욕은 대단하여 서로 좋은 위치에 자기 작품을 걸려고 싸움까지 했을 정도이다.”
토벽회의 제2회 전시회는 같은 해 10월 4일부터 동년 10월 11일까지 휘가로 다방에서 열렸으며, 서성찬을 제외한 5명이 참가하였다. 제3회 전시회는 1954년 6월 7일부터 그해 6월 14일까지 중구 창선동 실로암 다방에서 개최되었으며, 역시 5명이 참가하였다. 부산 최초의 화랑인 동구 동광동 타워 호텔 옆의 호수 그릴이 1958년에 설립되었으므로, 그 이전에는 이러한 다방에서 미술전을 많이 개최하였던 것이다.
토벽회 동인들은 주로 사실주의 화풍의 작품을 보여 주었다. 김윤민은 소를 그렸고, 김경은 명태를, 김영교는 산을, 임호는 들판과 염소를, 김종식은 물동이를 인 처녀 등 농촌 풍경을 그렸다. 특히 김경과 김영교는 자신의 사상을 그림에 강하게 나타내려고 하였고, 서성찬은 아주 힘이 넘치는 화풍을 보여 주었다.
[의의와 평가]
토벽회 동인들이 창립전을 열면서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내걸었다. “제작은 우리들에게 부가된 지상의 명령이다. 붓이 문질러지면 손가락으로 문대기도 하며, 판자 조각을 주워서 화포를 대용해 가면서도 우리들은 제작의 의의를 느낀다. 그것은 회화라는 것이 한 개의 손끝으로 나타난 기교의 장난이 아니오, 엄숙하고도 진지한 행동의 반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 여기에 우리들은 우리 민족의 생리적 체취에서 우러나는 허식 없고 진속한 민족 미술의 원형을 생각한다.”
선언문에서 보듯이 토벽회는 해방 이후 서양 미술의 도입에 따른 화가들의 고민을 함께하기 위하여 모인 것이다. 토벽회가 일제 강점기 감상적 인상주의 양식에서 탈피하여 민족적 양식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토벽회는 향후 부산 지역의 양식적 특성의 창조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