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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백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2916
한자 土白會
영어공식명칭 Tobaekhoe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양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미술 동인
설립 시기/일시 1976년연표보기 -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76년 9월 26일~1976년 10월 3일 - 창립전 개최
최초 설립지 토백회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정의]

부산 지역의 구상적 서양화 작가로 구성된 동인.

[설립 목적]

토백회의 ‘토백(土白)’은 “백의민족의 얼을 나타내는 하얀 캔버스 바탕[白]에 우리의 자연 한반도의 자연 풍치[土]를 조화시켜 문화 민족의 상징을 구현코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토백회는 모두 구상적인 화풍을 바탕으로 한 풍경 재현을 추구하였다.

[변천]

토백회는 1976년에 창립되어 그해 9월 26일부터 그해 10월 3일까지 부산 로타리 화랑에서 창립전을 가졌다. 토백회는 창립전에서 “내일에의 참된 자아 성장을 위해 저마다 서로를 격려하며 나름대로의 조형 언어를 찾고자 늦게나마 이 자리를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창립전에는 김문수(金文洙), 양재식(楊在式), 구은인(具銀寅), 박기택(朴基澤), 박맹식(朴孟植), 이성기(李晟基), 안세홍(安世洪), 윤종철(尹鐘澈), 정차영(鄭次泳)이 참여하였다. 당시 미술 학원과 의상 연구실을 운영하였던 두 명의 회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중학교·고등학교 교사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구상적 서양화를 표방한 토백회는 1976년의 창립전 이후로 2013년까지 연 2회의 정기전을 가져 왔다. 2013년 8월에는 BS부산은행 갤러리에서 19명의 작가가 유화 등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현황]

토백회는 2013년 현재 원로, 중견, 신진 등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성 작가들로만 구성되었던 초기와 달리 여성 작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또한 초기 구상 미술을 추구하던 모임은 회원들의 다변화로 풍경과 정물 등 구상 회화에서부터 추상화 등으로 확장되었다.

[의의와 평가]

토백회의 구성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회원들은 작업만 전문으로 하는 예술가와 달리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예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정기적인 전시회를 통해 회원 간의 교류를 쌓는 동호회의 성격이 강하며, 인상주의적인 화풍은 전통을 답습하는 한계를 갖기도 한다. 4회 서문을 쓴 미학 미술 평론가 장문호(張文戶)는 토백회의 작품 경향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이들 동인들의 작품은 삶과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정서적인 이미지가 보는 사람의 취향을 승화시켜 참애의 충격을 주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그들은 감상도 없이 상처의 마음도 없이 오직 냉정하게 그들 향토적 현실을 응시하고 작품화하고 있을 뿐이다. [중략] 그들은 영향과 허구 등에 저항하기에 충분한 예지와 이성 그리고 의지를 작품 속에 담았고, 환상이 그들 현실과 바뀌어 둔갑하는 허상을 배제하여 버렸다.

이런 작품 행위는 공상에 의해서 이끌어진 흥취의 이상(異常)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들과 친근한 일상의 현실을 참시각을 통해 주저 없이 폭로한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현실에 접착된 색감, 대낮의 물상들의 향토색은 시적 정취로 단장된 경시가 아니라 밝은 대낮의 빛으로서 하나의 물질로 묘사된 풍경인 것이다. 이 점에서 그들의 화경(画境)을 자연주의 이름으로 불러도 섭한 마음이 들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 물질감 추구가 자연의 표피를 애무하는 데 그쳐 있는 것이 아니라 심오한 에센스를 사로잡고 있기에 보는 사람에게 위압적으로 육박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들은 보는 이에게 강요하는 강박 관념이나 사상성도 없다. 그만큼 우리의 일반 관객들에게 가장 친근성을 줄 수 있음에는 틀림없다. 사실의 핵심이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평균 수준의 도덕적 정조를 줄 것이다. 그리고 조화가 잡힌 선의 균형과 밝고 아름다운 색, 안정된 구도 등이 작품 내용의 중용을 유지하고 토백회의 사실주의에 하나의 가치관을 부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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