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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2710
한자 裵永植
영어음역 Bae Youngsik
이칭/별칭 고암(古巖)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창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클래식기타리스트
성별
본관 성주(星州)
대표경력 배영식기타교실 운영
출생 시기/일시 1925년 7월 5일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57년 - 부산 USIS 홀 독주회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61년 - 서울 시공관 독주회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65년 - 부산시립교향악단과 협연
활동 시기/일시 1968년 - 한·일 교환 연주회 오바라 초청 공연
활동 시기/일시 1969년 - 대청장 독주회 개최
활동 시기/일시 1971년 - 새부산 예식장 독주회 개회
몰년 시기/일시 2011년 8월 27일 - 사망
출생지 배영식 출생지 - 함경남도 원산
거주|이주지 배영식 거주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
학교|수학지 오쿠라음악원 - 일본
묘소 배영식 묘소 - 충청북도 음성군

[정의]

현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클래식 기타 연주자.

[활동 사항]

배영식(裵永植)은 본관이 성주(星州)이며, 호는 고암(古巖)이다. 1925년 7월 5일 함경남도 원산에서 배승원(裵升原)과 김금지 사이에서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36년 11살 소년 시절, 아버지의 공장 한구석에 버려진 낡은 기타를 발견하곤 기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후, 함흥 제2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가고시마·대성중학교 등지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이 무렵 기타에 정식으로 입문하였는데, 레슨 선생은 와세다대학 출신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일본 제일의 클래식 기타리스트 오쿠라 쥰[小倉俊]이었다. 오쿠라 쥰의 한국인 제자로는 배영식을 포함해서 정세원(鄭世原)·김인걸(金仁杰) 등이 있었으나 정세원은 6·25 전쟁 때 월북하고, 김인걸은 해방 후 기타를 그만두면서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다. 배영식은 해방 이전 마쓰우라[松浦]4중주 단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45년 초 일본에서 귀국한 뒤 평양의 일본 교육 연대에 강제 징병을 당하였다가 7개월 후 해방을 맞았다. 6·25 전쟁이 일어나던 25살 때는 백골 부대에 자원입대하였다가 의병 제대한 후 묵호에서 배를 타고 포항 근처에서 하선하여 걸어서 부산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부산에 정착한 뒤에는 생계를 위해 배영식기타교실을 열었고, 배영식기타교실은 범일동·미화당·초장동·신창동·남포동으로 옮겨 다녔다.

1950~1970년대에는 화가 이중섭(李仲燮), 바이올리니스트 김학성(金鶴成)·오태균(吳泰均)·배도순(裵道淳) 등과 폭넓게 교류하였고, 특히 이 무렵 독주·협연·초청 연주를 많이 하였다. 도쿄와 함흥에서 독주회를 연 배영식은 1955년 남성여자고등학교 강당, 1957년 부산 USIS 홀, 1961년 서울 시공관, 1969년 대청장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그리고 1965년 동명 극장에서 부산시립교향악단과 협연을 비롯하여 1968년 대청장에서 한·일 교환 연주회 오바라 초청 공연을 하였고, 파라과이·브라질·부에노스아이레스 등 해외 초청 연주회도 열었다.

1971년 새부산 예식장 등지에서도 잇단 독주회를 여는 등 많은 활동을 하다가, 2011년 8월 27일 사망하였다. 그로부터 클래식 기타를 직·간접적으로 배운 문하생은 전국적으로 6만여 명에 이른다. 그 가운데는 김금헌·김정윤·조재경·심주영·곽승웅·옥석대 등의 제가가 있다. 현재 장남인 배학수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저술 및 작품]

배영식은 동요·가곡·민요·세계 명곡을 모아 『클래식 기타 애주(愛奏) 명곡집』을 편저하였고, 작품으로는 아리랑을 주제로 한 「한국 환상곡」을 남겼다.

[묘소]

묘소는 충청북도 음성군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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