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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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相殷- |
영어의미역 | Yun Sangeun Dress Shirts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의복/의복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 104[대청동 2가 24-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영숙 |
[정의]
근대 부산의 대표적 기업가인 윤상은이 입은 와이셔츠.
[개설]
구포저축의 설립자인 윤상은(尹相殷)[1887년 8월 10일~1984년 9월 25일]은 근대 시기 부산 구포 출생의 대표적인 자본가, 기업가이자, 행정 관료였다. 동래 부사를 지낸 윤홍석의 셋째 아들이고, 개성학교 창립자인 박기종의 사위이며, 부산대학교 초대 총장 윤인구의 아버지이다. 일찍부터 서구의 복식 문화를 수용하고 전파한 장본인으로, 윤상은 와이셔츠는 당시 일찍부터 서구 문화를 수용한 사회 지도자 계층 사이에서 평상시 외출할 때 입은 일반적인 옷이다.
[연원]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 상표가 확인되는 윤상은 와이셔츠는 미나카이 백화점 오복점이 부산에 1926년 개점하였으므로, 1920년대에 구입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윤상은이 사망한 이후 딸 윤학자가 아버지 윤상은과 어머니 박영자의 유품을 정리하여 2009년 6월 18일 부산 근대 역사관에 기증하였다.
[형태]
1점은 면 재질로 길이 83.5㎝, 품 54.0㎝, 팔 길이 58.0㎝이며, 38이라는 목둘레가 와이셔츠 깃에 찍혀 있는 일제 강점기 부산에 있던 미나카이 백화점 제품이다. 가슴 부위는 빳빳하게 손질하여 다려져 있고 스텐 칼라로 되어 있다. 다른 1점은 마가 포함된 합성 섬유 재질로 길이 84.5㎝, 품 53.0㎝, 팔 길이 52.0㎝이며, 상표 등이 남아 있지 않다. 앞가슴 부위 주름 장식이 없고, 앞길이가 뒷길이보다 짧게 되어있다.
[용도]
윤상은이 1920년대부터 정장 등과 함께 입었던 와이셔츠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당시 와이셔츠의 재료는 마직물로 된 아사와 포플린[뽀뿌린]이었으며, 겨울에는 모직으로 된 와이셔츠도 입었다. 와이셔츠의 색은 거의 흰색이 유행하였고, 목 부위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윤상은 와이셔츠’처럼 스텐 칼라 위에다 흰색의 덧 칼라를 따로 구입하여 갈아 대어서 입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정장용 와이셔츠의 소매는 여름에도 긴소매를 입었으며, 소매 끝에는 커프스 버튼을 하여 멋을 부렸는데 싱글형과 더블형 두 종류가 있었으며 넥타이핀과 함께 세트로 갖추어서 입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장용 와이셔츠 외에 넥타이를 매지 않은 노타이(no tie)용 와이셔츠도 많이 입었다. 이 같은 노타이 와이셔츠는 몸판에 칼라가 바로 달려 있으며, 여름에 반바지와도 함께 입었던 편한 스타일의 와이셔츠였는데 집에서도 쉽게 만들어서 입었다고 한다. 부산 근대 역사관에는 와이셔츠와 함께 윤상은이 입었던 정장·중절모·안경과 돋보기·약저울·체온계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또한 박영자의 의복 등도 함께 전시되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