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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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衣生活 |
영어의미역 | Clothing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영숙 |
[정의]
부산광역시 일대 주민들의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의생활 양식과 옷 짓기, 의복의 관리와 손질 등 옷에 관한 생활.
[개설]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부산 지역에 거주하면서 부산 지역 의생활 문화를 선도하고 손수 의복을 지어 입는 등 의생활 문화 경험이 풍부하다고 생각되는 80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내용과 문헌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의생활 및 현재까지의 변화 과정을 살펴본다.
[옷 짓기]
부산 지역 의생활 양식의 변화는 1920년대와 1950년대를 기점으로 크게 변화를 보인다. 1920년대 이전에는 전통 복식 양식이 주류를 이루다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이르면 의복 양식은 서구적 요소와 전통 복식 요소가 혼합되어 나타나며, 1950년대 이후부터 서서히 서구 복식적 요소가 정착되면서 의생활 전반에 걸쳐 서양복화되어 오늘에 이른다.
1950년대 전후를 중심으로 의복 짓기 풍속을 살펴보면, 192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길쌈에 의한 전통 직물을 이용하여 한복을 지어 입었는데, 손수 지어 입거나 한복집에 맡겼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이르러 개화사상에 영향을 받은 사회 지도 계층에서 서구화된 양복이나 양장을 입기 시작하면서 옷을 직접 구입하여 입게 되었다. 주로 일본 상표 브랜드의 옷을 백화점이나 중앙동 일대의 수입상을 통하여 구입하여 입었으며, 서민들은 주로 시장에서 파는 옷을 구입해서 입었다. 당시 부산에서 유명한 백화점은 구 부산시청 자리에 있었던 미나카이백화점[三中井百貨店]이었다.
해방 이후가 되면 점점 양복과 양장을 착용하는 사람들이 보편화되면서 전통 한복은 예복으로 된다. 당시 양복점과 양장점을 중심으로 맞춤옷이 성시를 이루었던 곳은 주로 범일동 지역과 남포동과 중앙동 일대였으며, 이후 점차 서면과 동래 지역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양복점과 양장점이 동네별로 자리를 잡아 맞춤옷을 지어 주었다. 당시 이 같은 맞춤옷 시대에 발맞추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양장 기술을 교육한 곳은 현재의 노라노양장학원[현 노라노디자인아카데미]이었으며, 이곳에서 의복디자인을 비롯한 전문적인 양장 기술을 교육받은 사람들이 맞춤옷 제작을 위한 양장업에 종사하였다.
전통 한복에 있어서도 불편한 한복의 개량화를 위하여 서양복 기술이 필요하였는데 1957년에 부산에 이주하여 지금까지 한복업으로 평생을 바친 한복 명장 김영재는 19세 때부터 혼수 바느질을 시작하여 양재 학원에도 다니면서 한복과 양장 기술을 함께 배워 개량 한복을 짓는 데 이용하였다고 전한다.
[의복의 관리와 손질-세탁]
세탁 시 세제는 주로 양잿물을 받아서 사용하였는데, 잿물을 낼 때는 시루나 소쿠리에 쌀가마나 짚을 두껍게 깔고 재를 넣어 뜨거운 물을 부어 받아 만들었다. 정하게 받아 낼 때는 삼베를 깔아 받아 내기도 하였고, 쉽게 잿물을 내어 쓸 때는 재를 독에 담아 물을 부어서 우려 낸 물을 그대로 떠서 사용하거나, 비가 올 때 기와와 초가지붕에서 받아 둔 물을 초벌 세제로 사용하였다. 잿물은 일반적으로 무명이나 마직물의 세탁 시에 사용하였고 명주에는 색이 누렇게 변할 우려가 있어서 잘 사용하지 않고 흰 비누를 사용하였다. 쌀겨로 만든 검은색의 똥 비누는 굳은 때를 뺄 때 사용하였고, 흰 비누는 해방 이후 미군 부대 제품이 생필품으로 보급되면서 사용하였는데 유색 옷이 아닌 대부분의 옷들은 모두 삶아서 입었다.
[의복의 관리와 손질-푸새와 손질]
1950년대 이전에는 명주, 무명, 모시, 삼베 등의 전통 직물들이 여전히 통용되었으나 해방 이후 인견 직물을 비롯한 반짝이, 지지미, 다후다[taffeta, 광택이 있는 얇은 평직 견직물], 나일론 같은 합성 섬유의 출현으로 의복 재료의 획기적인 소재 변화를 가져오게 됨에 따라 의복의 관리와 손질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해방 이전의 전통 직물의 관리와 손질에 있어서 특히 명주옷과 모시옷 등 고운 소재의 옷들은 정갈하게 손질하여 외출할 때 입었다. 디자인이 다양하지 못한 전통 한복의 옷차림새를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푸새[풀 먹임]와 손질에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하였다. 모시옷을 손질할 때는 주로 찹쌀 풀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찹쌀을 물에 담가 일주일간 물을 갈아대면서 삭힌 후, 건져서 기계에 갈아 가루를 신문지 서너 장 위에 놓고 이틀 동안 햇볕에 말려서 두고 사용하였다. 풀을 쑬 때는 물에 개어 둔 찹쌀가루를 넣고 잘 저어서 풀을 끓여 사용하는데 모시등지기 하나당 찹쌀가루 한 숟갈 정도의 양을 사용하였다. 풀을 먹일 때는 옷감을 풀물에 담가서 조물조물 풀 기운이 고루 스며들도록 하고, 약간 눅눅하게 되었을 때 다림질하여 바싹 말린 후 다시 물을 품어서 깨끗이 다렸다.
무명옷과 명주옷을 손질할 때에는 주로 쌀풀과 찹쌀 풀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찹쌀 풀은 광택이 많이 나고 쌀가루는 광택이 덜하였다. 밀가루 풀은 구멍이 잘 막히고 색감이 덜하여 명주나 고운 옷에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대개는 찹쌀가루나 쌀가루를 이용하여 푸새 손질을 하였다. 풀을 먹일 때는 풀을 고르게 먹인 후 풀기를 꼭 짜서 탁탁 털어서 말리고 바짝 말린 후 다시 걷어서 물을 품어 가며 손질하였다. 손질할 때는 섬유 올의 경사 위사 방향을 잘 다루어서 매만진 뒤, 옷들을 포개어서 면 보자기로 싼 후에 발로 자근자근 밟아 주어 풀 기운이 섬유 올마다 잘 스며들게 하였다. 그 다음 잠깐 말린 후 습기가 적당할 때 올 대로 잘 손질하여 다려서 입었다.
간혹 명주옷에 광택을 내기 위하여 풀가사리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풀가사리를 쓸 경우는 찬물에 녹인 후 베 보자기에 물을 받혀서 그대로 쓰거나 쌀풀이나 찹쌀 풀에 섞어서 사용할 때는 풀을 쑬 때 받쳐 둔 풀가사리 액을 조금 넣어서 사용하였다. 풀가사리는 찬물에 담가 두면 쉽게 녹아서 사용하기가 편한데 이는 용액의 성분이 알긴산 나트륨으로 일종의 고분자 물질이므로 물에 잘 녹고 투명하고 균일한 용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물 조직의 내부까지 침투가 원활하고 옷감에 탄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오염 방지와 세척성이 향상된다.
그 외에 밍크와 같은 모피를 손질할 때는 쌀가루를 갈아서 날리지 않을 만큼 약간 수분이 있을 때 모피 옷에 척척하게 뿌리고 손으로 비비면서 손으로 모피 털을 쓸어 밀어내면 털이 뽀송뽀송하게 살아나 깨끗이 손질된다고 하였다. 잘 털어 낸 후 음지에서 말리는데 손질된 모피는 모피 냉장고가 따로 있어 보관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