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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문화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153
한자 生活文化圈
영어의미역 Living Cultural Areas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하

[정의]

부산광역시에서 공통된 특징을 보이는 생활 문화가 지리적으로 분포하는 범위.

[개설]

부산의 인문·자연 환경 특성과 환경에 따른 생활 문화권, 중심지의 이동 변화, 교통 및 주거 지역의 변화, 상권의 변화, 주거 지역과 상권을 제외한 분야의 기능적 분포 등을 통해 생활 문화권(生活文化圈)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문·자연 환경의 특성]

부산은 한반도의 남동단에 위치한 해안 도시이며, 산지·평야·강·바다·섬 등 매우 다양한 환경이 공존하는 도시이다. 또한 전체 면적의 46% 이상이 임야로 산지가 발달한 도시이기도 하다. 부산은 지형적으로 크게 동부 구릉성 산지대와 서부 평야 지대로 나뉜다. 동부 구릉성 산지대에는 낙동강 변을 따라 남북으로 발달한 금정 산맥과 울산에서부터 시작해 동부 지역을 따라 발달한 금련 산맥이 있다.

금정 산맥낙동강 변과 동래 지역을 구분하는 경계 구실을 하였으며, 금정 산맥금련 산맥 사이를 흐르는 수영강 변의 평야 지역을 따라 거주 공간이 발달하였다. 또한 이들 산맥에 의해 남북축의 교통로가 발달해 왔고, 근대적 교통수단이 등장하면서 더욱 고착화되었다.

역사적으로 부산은 조선 시대까지 동래부를 중심으로 한 변경 지역이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부산포를 중심으로 항구 도시로 급성장하였다. 1914년에는 현재의 중구·동구·영도구서구의 일부를 중심으로 한 부산부동래군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1936년에는 부산부서구 일부와 남구·부산진구가 편입되었고, 1942년에는 동래구·해운대구·사하구 지역으로 부산부가 확장되었다.

1963년 정부 직할시로 승격하며 금정구·북구·사상구까지 시역이 확장되었고, 1989년 김해군 가락면녹산면, 의창군 천가면이 편입되어 강서구가 되었으며, 1995년 기장군이 편입되어 현재의 부산의 시역이 확정되었다. 이 같은 시역 확장 과정은 부산광역시의 다양한 생활 문화권을 설명할 근거가 된다. 먼저 전통적인 동래부 지역과 일제 강점기에 발달한 중구동구를 위시한 해안 지역을 구분하게 되며, 다음으로는 김해부의 영향권에 있던 강서구와 울산 및 양산 등의 영향권에 속하던 기장군으로 지역성이 구분된다.

[환경에 따른 생활 문화권]

부산의 생활 문화권은 일차적으로 각지의 주민들이 처한 자연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긴 해안선과 영도가덕도 같은 큰 섬을 중심으로 한 해안 지역과 낙동강·수영강 등 하천 주변을 따라 발달한 내륙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신석기 시대까지만 해도 부산 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은 식량을 얻기 쉬운 하천과 바다 근처에서 생활하다가, 농경이 발달하면서 육지로 옮겨 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거주 공간의 확대 과정에서 해안 지역과 내륙 지역으로의 거주지 분화가 이루어졌다.

내륙 지역은 동래 지역을 필두로 강서 지역의 평야 지역, 북구금정구 지역의 산지, 기장의 내륙 지역에서 하천 변을 따라 발달하였다. 내륙 지역의 육지 생활 양식은 청동기 시대 이후 부산 지역의 주된 생활 양식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반면 강서구, 사하구, 서구, 중구, 남구, 수영구, 해운대구, 기장군남해동해를 끼고 있는 지역은 생활 양식이 육지보다는 해양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해안 지역은 조선 후기 이후부터 현재까지 항구 도시 부산이라는 브랜드를 결정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해양 수도 또는 동북아 최대 항만 등의 수식어가 붙는 근간이 되었다.

[부산 중심지의 변화]

조선 전기까지의 부산은 동래 읍성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으로 구성되어, 현재의 동래구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인구가 극소수인 변방이었다. 고려의 동래현, 조선의 동래부[한때 동래현으로 강등]로 이어진 동래 지역은 조선 전기까지 현재 부산 지역의 절대적인 중심지였다. 이러한 동래 중심의 지역 구조는 개항기 이후 일본의 강제 점거로 변화를 맞았다.

부산 지역에는 조선 전기부터 삼포 개항과 중기의 초량 왜관의 설치 등으로 현재 중구·동구·영도구 지역이 일본과의 접점 역할을 해 왔는데, 개항기에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되며 초량 왜관이 있던 지역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는 현재의 중구를 중심으로 한 일본인 거류지로의 일본인 이주, 거류지 주변으로의 한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새로운 중심지가 형성되었다. 이에 부산의 중심은 동래 지역에서 현재의 중구·서구·동구·영도구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또한 진주에 있던 경상남도 도청이 서구로 이전하고, 부산부와 해방 이후 부산시청도 중구 지역에 머물면서 1980년대까지 이 지역이 부산의 행정·상업·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1980년대 이후 부산은 급속한 시역 확장과 도심[중구 남포동중앙동 등지] 과밀화 문제가 대두되며 중심지의 이전 문제를 고려하게 되었다. 1998년 도심지 과밀화 해소와 부산 지역 전체 균형 발전을 위해 부산광역시청중구 중앙동에서 연제구 연산동으로 이전하였고, 2002년 부산지방법원과 검찰청 등이 연제구 거제동으로 이전하며 행정 중심을 연제구로 옮기게 된다. 또한 상업 중심은 부산진구서면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심지는 해운대구·금정구·사상구 등지에 조성된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활 중심지가 형성되었다. 이로써 부산은 중구 중심의 단핵 도시에서 서면 등 여러 부도심이 발달하며 다핵 도시로 변모하였다.

[교통의 변화]

부산광역시는 1963년 직할시로 승격된 후, 강서구기장군의 편입 등으로 지속적인 시역 확대와 급속한 인구 증가가 나타났다. 부산의 인구는 1972년 200만 명에서 1975년 250만 명, 1979년 300만 명으로 증가하며 인구 이동과 도시 기능의 확보를 위해 교통 발달이 필수 요소로 등장하였다. 이에 기존 도로는 복선화·광역화 되었으며, 제1 도시 고속 도로인 번영로를 시작으로 동서 고가로관문 대로 등 도시 고속 도로가 신설되었고, 구포 대교·을숙도 대교낙동강을 통과하는 교량과 광안 대교·남항 대교 등 연안 대교가 건설되며 강과 바다를 관통해 지역 간 접근성을 높였다.

또한 금정 산맥금련 산맥 등 부산을 남북으로, 동서로 통과하는 산지에는 구덕 터널·황령산 터널 등이 개통되며 교통의 편의를 더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도시 철도가 개통되며 부산의 교통난 해소에 기여하였다.

부산 도시 철도는 1985년 1호선 1단계[노포동~범내골] 개통을 시작으로, 1994년 1호선 전면[노포동~신평] 개통, 1999년 2호선 1단계[양산 호포~서면] 개통, 2001년 2호선 2단계[서면~금련산] 개통 등으로 이어져 2012년 현재 4호선까지 개통되어 부산의 남북과 동서를 연결한다.

도시 철도의 개통은 역세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거주 지역과 상권을 재편하고, 해운대나 덕천 로터리 등 새로운 부도심을 활성화하였으며, 또한 해운대 신시가지·화명 신도시·기장군 신시가지 등 외곽 주거지를 활성화하였다. 이에 현재 부산광역시의 생활 문화권은 지하철 노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주거 지역의 변화]

개항기 이후 부산의 중심은 현재의 중구·서구·동구·영도구 지역으로 당시 해당 지역에 많은 인구가 과밀화되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정착한 일본인 거주 지역과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한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 지역, 해방 이후 귀환한 동포들의 거주 지역, 6·25 전쟁 시기에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의 거주 지역이 모두 중구·서구·동구·영도구 지역에 몰려 있었다. 이들 지역의 산비탈에 형성된 이른바 ‘산동네의 판자촌’으로 불리는 산복 도로[현재 망양로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주변 마을이 형성되는 기형적 형태가 나타났다.

1960년대 이후 인구 급증과 주택난 가중으로 도시 계획과 토지 구획 사업 등이 시행되며 새로운 주거 지역이 조성되고, 빈민촌의 과밀화 해소와 주택 개선 사업 등 주거 환경 변화가 일어났다. 1970년대 이후에는 부산시와 주택 공사, 민간 사업자 등에 의한 주택 보급과 사상구 모라동·학장동·주례동, 북구 덕천동, 부산진구 개금동·당감동, 북구 금곡동·만덕동, 수영구 망미동, 해운대 등지의 택지 개발 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며 주거 지역의 변화가 가속화되었다. 2002년 이후 해운대 신도시, 화명 신도시, 정관 신도시 등지의 신도시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주거의 중심지로 변모해 가고 있다.

[상권의 변화]

동래 읍내장, 구포장, 독지장, 부산장 등 개항기 이전부터 존재한 오일장 형식의 전통 시장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점포와 건물을 갖춘 상설 시장[현재의 재래시장]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시장들은 장사꾼과 장꾼들이 몰려드는 향토색 짙은 전통 시장의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해방과 6·25 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증가한 인구에 의해 부산의 재래시장 수는 늘어났는데, 이 시기에는 ‘깡통 시장’으로 불린 국제 시장, ‘도떼기시장’으로 불린 부평 시장, 수산물 유통의 대명사가 된 자갈치 시장 등이 중구 중앙동, 남포동, 광복동 일대와 함께 부산의 중심 상권을 형성하였다.

1960년대 이후 중구 중앙동의 구 시청[현 롯데 백화점 중앙동 지점]에서 부산진구서면 교차로에 이르는 도심 간선 도로[현 중앙 대로] 확충으로 남북의 긴축을 형성하며 시가지가 발전하면서 동구 범일동 부산진 시장·자유 시장·평화 시장·중앙 시장 등의 재래시장이 들어섰고, 서면을 통해 전통적 상권인 서쪽의 구포, 북쪽의 동래, 동쪽의 수영·해운대 등지로 연결도 가능해져 서면이 새로운 상업 중심지로 성장할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중심지가 원도심(原都心)[구도심. 부산의 원도심은 중구·동구·서구·영도구 지역을 일컫는다]에서 부산진구서면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상업 중심도 서면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대기업을 비롯한 대형 유통 업체들을 중심으로 대형 마트와 미화당 백화점·유나 백화점·태화 백화점 등 기존 향토 백화점을 대신한 백화점 등이 본격적으로 개점하기 시작하는 등 유통 구조에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하였고, 10대와 20대가 새롭게 소비 주체로 떠오르면서 그들이 주로 모이는 대학가 주변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금정구 장전동부산대학교 주변, 남구 대연동경성대학교·부경대학교 주변, 사하구 하단동동아대학교 주변 등지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었다.

[기능적 분포]

주거 지역과 상권을 제외한 분야의 기능적 분포를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부산의 공업 지역을 형성한 남구·영도구·북구·사상구 등지에 위치한 업체들은 눈에 뜨게 해외를 비롯한 역외로 이전하고 있다. 이들은 사하구 지역의 신평·장림, 강서구 지역에 형성된 녹산·신호·명지 등지의 신흥 공업 단지나 부산 진해 경제 자유 구역으로 이전하며, 이 지역의 주변에 새로운 주거 지역과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공업 지역 주변에는 최근 외국인 거주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공업 지역에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 비율의 증가 때문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부산에는 11개 시립 도서관과 지방 자치 단체가 설립한 14개 공공 도서관이 각 구에 분포해 있고, 주거 지역에 인접하여 공원 녹지가 형성되어 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 부경대학교·경성대학교·부산외국어대학교·동명대학교 등 4개의 종합 대학과 부산 시민 회관·부산 문화 회관·부산광역시립박물관 등이 있는 남구, 부산대학교금정 문화 회관 등이 있는 금정구, 벡스코·영화의 전당·세계 최대의 백화점인 신세계 백화점 센텀 시티점 등이 있는 해운대구 등이 대표적으로 문화적 혜택을 누리는 지역이다.

또한, 해안선을 따라 분포해 있는 여러 해수욕장[사하구 다대포 해수욕장, 서구 송도 해수욕장, 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 해운대구 해운대 해수욕장·송정 해수욕장, 기장군 일광 해수욕장·임랑 해수욕장]과 몰운대·태종대·이기대 등지의 경승지, 오륙도·낙동강 하구 둑·낙동강 하구 철새 도래지 등과 같은 자연 관광 지역, 내륙 지역의 동래 읍성·금정산성·범어사를 비롯한 각종 유적지, 부산을 상징하는 자갈치 시장·국제 시장·사직 야구장을 비롯한 각종 특화 거리 등의 인문 관광 지역이 위치한다. 이러한 관광 지역이 존재하는 중구, 서구, 강서구, 동래구, 수영구 등도 문화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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