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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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常服 |
영어의미역 | Everyday Clothes |
이칭/별칭 | 일상복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권영숙 |
[정의]
부산광역시 지역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입던 옷과 바깥출입 시에 입었던 외출복.
[개설]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부산 지역에 거주하면서 의생활 문화에 공로가 큰 80세 이상의 어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한 내용과 부산 지역의 역사 자료에서 보이는 사진 자료 등을 토대로 하여 평상복의 변화 추이를 보았다. 제보자들의 의생활 민속은 주로 191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이며, 이 시기에 나타난 복식 변화는 1920년대와 1950년대를 기점으로 복식의 양상이 크게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 이전]
사진 자료와 제보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1920년대 이전에는 전통 한복 차림새가 보편화하여 조선 말기의 의복 양상인 짧은 저고리와 전형적인 얹은머리 형태가 일반적인 모습이다. 양반가의 경우 몸치장에 있어서도 서민 계층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당시 외국 유학을 통하여 서구식 문물을 접하고 돌아온 개화파를 중심으로 사회 근대화에 따른 관복 제도의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을 새롭게 개혁하기 위하여 1884년 갑신 의제 개혁, 1894년 갑오경장, 1895년 을미개혁 등, 세 차례의 의제 개혁을 거치면서 전통 한복 차림새에 서구식의 외래적 요소가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이전의 의복 형태는 여자 옷의 경우 당코 깃저고리와 삼회장저고리, 저고리의 간소화 등에 따라 새로 생긴 가슴 띠의 모습이 나타난다. 남자 옷의 경우에는 전형적인 두루마기 차림새의 외출복과 망건, 탕건 등의 관모를 쓴 모습 등이 눈에 띈다. 이 같은 현상은 남자들의 경우 단발령에 의한 머리쓰개 류가 사라지면서 서양식 모자로 대체되는 복식 변화의 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이 시기의 외래적인 요소로는 서구적 요소와 일본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서, 학생들의 교복과 공무원들의 제복이 서양식으로 입혀졌다. 외출 시 사람들의 옷차림새는 전통 한복 차림을 할 경우에도 서양식 모자를 쓴 사람들이 많았다. 여자의 경우에는 통치마 저고리에 서양 구두를 신고 머리형은 파마를 하였다. 남자의 경우 전통 한복 차림새와 서구 양식이 가미된 한복 차림새, 그리고 완전한 서구식 차림을 한 형태로 구분된다. 서구식 차림의 경우, 검은색이나 흰색 양복에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하고 서구식 모자를 썼다. 당시의 맥고모자, 중절모자, 세비로[새빌로우, Savile Row, 런던의 신사복 문화 발원지] 양복, 지카다비[작업화}, 도리우치[둥글넓적한 사냥 모자] 등의 서구식 의복 차림새는 이미 서구 문화에 익숙한 사회 지도자 계층의 사람과 공무원을 중심으로 입혀졌으며, 당시 이들은 패션 문화를 선도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전쟁으로 인한 의복의 실용성과 기능성이 요구됨에 따라 의복의 간소화가 이루어져 몸빼[일바지], 당꼬 주봉[당꼬 바지, 승마 바지와 같이 몸에 달라붙는 바지], 감발 등과 같은 기능성이 중시된 의복이 나타났다. 1920년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흰색 의복들은 실용성이 강조된 검정계, 회색 또는 밤색계의 옷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전의 비활동적이며 거추장스러운 긴치마와 여자용 전통 속옷을 비롯한 머리쓰개 류 등은 개량되거나 사라지게 되었다. 여자들의 머리 모양에 있어서는 종래의 땋은 긴 머리 형태에서 단발머리와 파마머리 같은 서구식 머리가 유행하였으며, 가르마에 있어서도 복판 가르마에서 왼 가르마가 유행하였다.
당시, 복식의 혼용[서구, 일본, 전통]화 경향은 사람들이 편한 대로 옷을 입어 검은 통치마에 버선을 신고 짚신을 신는 사람과 고무신을 신는 사람이 공존하였다. 치마차림에 스웨터와 양말을 신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버선을 신은 사람 등 특별한 기준이 없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의 교복 또한 검은색 교복을 입은 학생과 한복 차림 학생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고, 바지저고리 차림의 학생과 조끼를 입은 학생, 두루마기를 입은 학생, 운동화를 신은 학생, 고무신을 신은 학생 등, 다양한 복식이 혼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일제 강점기 아래에서 혼용된 의복 문화는 해방 이후 자립을 위한 직물 산업의 부흥 정책에 따라 인견을 비롯한 실용적인 화학 소재가 보급되면서 여자 옷의 경우, ‘지지미 치마’나 ‘반짝이 저고리’ 등 의복의 명칭 앞에 다양한 직물 명칭을 붙였다. 이 같은 소재의 다양화는 복식 문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고,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에 따라 전통 한복은 추석 등의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에 입는 예복으로 정착되고 일상복은 거의 서구식 의복 문화로 정착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의복 디자인도 맞춤복에 의한 개성화가 요구되고 다양한 형태의 의복이 유행에 따라 입혀졌으며, 1980년대 이후부터는 대량 생산에 의한 기성복 시대가 열리게 되면서 오늘날처럼 누구나 쉽게 옷을 구입하고 편하게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