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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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瓜亭曲 |
영어의미역 | Jeonggwajeong-gok[Song of Love for the Lord] |
이칭/별칭 | 「정과정곡」[진작]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임주탁 |
[정의]
1151년부터 1157년 사이에 부산에서 유배 생활했던 정서가 지은 우리말 노래.
[개설]
「정과정곡」은 본관이 동래인 고려 때의 문인 정서(鄭敍)가 국왕의 소환 약속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소환 명령이 없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빠른 소환을 바라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 고려 가요이다. 정서는 인종(仁宗)의 손아래 동서이자 의종(毅宗)의 이모부였다. 그러나 의종이 왕위를 계승할 때 갈등을 빚었던 대녕후와 관련된 인물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정서도 1151년에 동래현으로 유배되었다. 「정과정곡」은 정서가 동래현에서 귀양살이를 할 무렵에 창작한 것이다.
이러한 「정과정곡」이 언제부터 조정의 연회에 쓰이는 음악으로 수용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정과정곡」이 『고려사(高麗史)』 「악지」의 고려 속악(俗樂)[고려 시기 민속 음악을 일컫는 이름]에 포함되어 있고,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소악부(小樂府)」의 악부시(樂府詩)[노래의 의미를 해석하여 짓는 한시의 한 유형]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유숙(柳淑)[1324~1368], 정추(鄭樞)[?~1382], 한수(韓脩)[1333~1384], 이숭인(李崇仁)[1347~1392] 등이 이에 대한 소회를 시로 표현한 점 등으로 미루어, 그 시기를 고려 후기쯤으로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조선 시대에 「정과정곡」은 충혜왕(忠惠王) 때의 ‘후전진작(後殿眞勺)’[고려 충혜왕 때 부르던 진작]과 함께 진작(眞勺)[고려 때 속가의 가장 빠른 곡조의 이름]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조선 초기에 조정의 연회에 쓸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노랫말이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충신이 군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이고, 오랫동안 악공들이 연습하여 사용해 온 곡이라는 주장 때문에 배제되지 않았다. 『악학궤범(樂學軌範)』, 『악장가사(樂章歌詞)』, 『대악후보(大樂後譜)』 등에 실려 전한다.
[구성]
「정과정곡」은 다음과 같이 11개의 악조로 구성된 악곡에 우리말로 된 노랫말이 배열되어 있다.
[전강] 내 님을 그리와 우니다니
[중강] 山(산) 졉동새 난 이슷요이다
[후강] 아니시며 거츠르신 아으
[부엽①] 殘月曉星(잔월효셩)이 아시리다
[대엽] 넉시라도 님을 녀져라 아으
[부엽②] 벼기더시니 뉘러시니가
[2엽] 過(과)도 허믈도 千萬(천만) 업소다
[3엽] 힛마리신뎌
[4엽] 읏븐뎌
[부엽③] 니미 나를 마 니자시니잇가
[5엽]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이렇게 11개의 악조와 결합된 노랫말을 어떤 시형으로 재구성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10구체 향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는 관점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3엽~5엽’의 노랫말을 1구로 묶고 ‘5엽’을 “아소 님하/도람 드르샤 괴오쇼셔”와 같이 2구로 나누어 10구로 재구성하여 의미 단락을 ‘전강~대엽’, ‘부엽②~부엽③’, ‘5엽’의 셋으로 구분하고 있다.
* 악조는 현악기에 맞게 만든 강조(腔調)와 관악기에 맞게 만든 엽조(葉調)로 구분된다. 강조는 악보로 배열되는 순서에 따라 전강, 중강, 후강으로 구분되고, 엽조는 앞의 악조에 덧붙여지는 부엽과 독자적인 성격을 갖는 대엽, 중엽, 소엽, 1엽~5엽이 있다.
[내용]
「정과정곡」은 ‘님[의종]’을 청자로 설정하여 유배의 부당함을 역설하며 과거의 소환 언약을 상기시키고, 소환의 당위성을 피력하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처지를 산 접동새에 견주고[전강~중강] 자신의 무죄함을 거듭 말하고 있다[후강~부엽①, 2엽]. 또 죽어서도 함께 하겠다고 굳게 약속하였던 ‘님’의 언약[대엽, 부엽②]이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신뢰할 수 없는 것인가[3엽]라고 따지고 있다. 그리고 ‘님’이 벌써 자신을 잊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드러내며[부엽③] ‘님’이 다시 사랑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5엽]. “살읏븐뎌”, “도람”과 같이 여전히 그 말뜻을 밝히지 못하는 말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정과정곡」은 귀양살이하는 작가 정서의 마음을 진솔하게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징]
표현과 형식면에서 향가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정과정곡」은 향가계(鄕歌系) 고려 가요로 분류된다. 신라의 향가 가운데 악조와 결합된 작품은 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정과정곡」은 10구체 향가가 악조와 결합된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아으’와 같은 차사(嗟辭)[감탄하는 말]가 거듭 쓰인 사례도 다른 향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인데, 이 또한 향가가 악조와 결합되는 과정에서 붙여진 것으로 보여 진다.
[의의와 평가]
「정과정곡」의 의의와 그에 대한 평가는 문학사·음악사·지역 문화사적 측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문학사적 측면에서 「정과정곡」은 소멸 단계에 있었던 향가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 준 작품이라는 견해와 ‘충신연주지사’의 선구적 모습을 보여 준 작품이라는 견해가 있다. 음악사적 측면에서는 시조 악조(樂調)인 만대엽·중대엽·삭대엽이 ‘과정삼기곡(瓜亭三機曲)’에서 나왔다고 한 이익(李瀷)[1681~1763]의 견해에 근거하여 시조 악조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견해들로 인해 「정과정곡」은 문학사적으로나 음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역 문화사적 측면에서도 「정과정곡」은 부산의 동래 지역을 역사적·문화적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였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