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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량동립학교 야학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7776
한자 草梁洞立學校夜學科
영어의미역 Night School Establishment as Choryang-dong School
이칭/별칭 부산야학
분야 문화·교육/교육,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형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야학교
설립자 정기두|김영규|김덕우
설립 시기/일시 1908년 3월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초량동립학교 야학과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정의]

개항기 부산 초량 지역에 있었던 사립 초량동립학교 부설 야학.

[설립 목적]

을사늑약 이후 국망에 대한 위기의식이 점증하는 가운데 근대 교육 운동이 확산되었다. 각지에는 사립 학교와 더불어 야학이 설립되어 근대 교육에 대한 수혜를 확대시켰다. 부산 지역도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여 일찍부터 야학에 의한 근대 교육이 확산되고 있었다.

특히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가운데 서울에서 노동야학회와 급수상야학[일명 물장수야학]이 설립·운영되었다. 물장수는 함경북도 북청 출신이 가장 유명하며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소식은 부산 지역 유지들의 인식 변화를 초래하였다. 미약하나마 노동자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이들에 대한 문맹 퇴치가 급선무로 부각되었다. 노동자에게 시세 변화를 각성시킴과 아울러 사회적인 책무를 일깨우려는 의도였다.

[변천]

초량동립학교 야학과는 1908년 3월 부산항에 거주하던 정기두(鄭箕斗)·김영규(金永圭)·김덕우(金德祐) 등이 사립 초량동립학교(草梁洞立學校) 부설로 설립하였다. 초량동립학교 야학과 설립에 즈음하여 관내 유지 청년들은 명예 교사로 자원하는 등 열성을 다하였다. 이에 노동자가 일시에 50여 명이나 출석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일명 부산야학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폐교 시기는 알 수 없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상사에 가장 필요한 한글·산술·습자·창가·편지 쓰기 등은 주요한 과목이었다. 수업은 노동이 끝난 야간을 이용하였으며 사립 초량동립학교 교실을 이용하였다. 경비는 주민과 유지들 기부금으로 운용되었다. 특히 경향신문사에 교재로 사용할 신문을 무료 제공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 야학에 의한 근대 교육 시행은 노동자층 현실 인식을 심화시키는 등 불합리한 현실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노동 운동을 추동하는 밑거름이었다. 3·1 운동 이후 부두 노동자를 비롯한 노동 운동은 이를 반증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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