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8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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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純甫 |
영어음역 | Bak Sunbo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광우 |
[정의]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교육 운동가이자 정당인.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아버지는 박기현(朴琦賢)이고, 어머니는 안경이(安鏡梨)이다.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오남이(吳南梨)와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박순보(朴純甫)는 1943년 12월 15일 경상북도 청도군 신지리에서 태어났다. 청도에서 보통학교를 수학한 뒤 1960년 부산 동래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고등학교 1학년 시절 4·19 혁명을 겪었는데, 이때 부산 지역을 뒤흔들었던 동래고등학교 학생들의 4월 18일 가두시위에 참여하였다.
1963년 부산대학교 물리대학에 입학하여 교직의 꿈을 가꾸었다. 졸업 후 1970년 3월 언양 상북중학교에서 첫 교편을 잡고 참교사의 꿈을 실천하던 중 1973년 3월 부산 서면중학교로 이직하였다. 서면중학교에서 사학의 부조리와 비교육적 처사에 항거하며 몸부림치던 1988년 11월 ‘부산교사협의회’ 사무실[양정 로터리]에 직접 찾아가 교육 민주화 운동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1988년 11월 서면중학교에서 ‘평교사협의회’를 설립하고 부산의 교육 민주화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89년 5월 3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을 창립하고 부지부장을 역임하는 동시에 같은 해 6월 1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의 창립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8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을 이유로 해직을 당하였고, 1990년과 1994~1995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의 지부장을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94년 각서를 강요한 복직을 거부하고 활동하다가, 해직 교사 가운데 마지막인 1999년 3월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에 복직하였다. 1998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1년 민주주의민족통일 부산연합 상임 의장으로 제5공화국이 조성한 공안 정국에 대항하여 교육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지키기 위해 일신을 바쳤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박순보는 1992년 4월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부산 연제구 ‘범민주 단일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 결과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최형우와 대결하여 유효표 33%를 득표하여, 김영삼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1996년 4월 제15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부산 연제구 후보로 출마하였다. 2000년 민주노동당 부산시지부 초대 지부장을 역임하면서, 제1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 부산 연제구에 다시 출마하여 ‘민중의 정치 세력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2001년부터 3년간 민주노동당 중앙 위원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하였다.
2005년 교원공제회 상임 감사, 2006년부터 3년간 서울 교육 문화 회관 사장으로 교육부 산하 기관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 일조하다가 지병을 얻어 부산으로 낙향하였다. 지병에도 불구하고 2010년 부산광역시 교육감 선거에서 박영관 후보의 선거 대책 본부장으로 활동하다가, 2011년 6월 ‘담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다가, 그해 8월 11일 오전 5시 향년 69세로 사망하였다. 장례는 민주 시민 사회장으로 엄수되었다.
[묘소]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솥발산 공원묘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