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742
한자 下味面-機張縣-
영어음역 Hami-myeon[Gijang-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일광면|정관읍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장동표

[정의]

조선 후기 기장현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하미면(下味面)은 조선 후기 기장군 산하 행정 구역의 하나이다. 조선 시대 지방 통치 체제의 정비를 통해 중앙 집권화가 추구되고, 면리제(面里制)를 통해 국가의 군현 하부 촌락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조선 초에 제정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동래부의 사회·경제적 사정에 따라 부분적으로 변천을 거듭하였다.

[관련 기록]

기장현 하미면에 대한 대표적 기록은 19세기 전반에 간행된 『기장현 읍지(機張縣邑誌)』의 방리(坊里)조에 “읍내면, 동면, 상서면, 남면, 하서면, 하미면”으로 편제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용]

신묘식[1831]과 을묘식[1855] 호구 조사를 수록한 19세기에 간행된 읍지 『기장현 읍지』에 하미면은 산막방(山幕坊), 대전방(大田坊), 예림방(禮林坊), 독이방(禿伊坊), 좌촌방(佐村坊), 장안방(長安坊), 신리방(新里坊) 등 7개 방(坊)으로 편제되어 있다. 이 가운데 산막방은 지금의 기장군 정관읍 모전리, 대전방은 정관읍 달산리, 예림방은 정관읍 방곡리로 바뀌었다. 독이방은 지금의 기장군 일광면 칠암리, 신평리, 문동리로 변천하였다. 하미면의 좌촌방, 장안방, 신리방은 근대 이후 행정 구역의 개편 과정에서 기장군 장안읍의 좌천리, 장안리, 오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변천]

하미면의 기원은 원래 1413년(태종 13)에 기장현의 북면(北面)이었는데, 1599년(선조 32) 임진왜란 이후 기장현이 없어지면서 울산군 하미면으로 편입되었다. 1617년(광해군 9) 기장현이 복설되었지만 울산군 하미면으로 남았다. 그러다가 1653년(효종 4)에 울산군에서 기장현에 복귀되었다가, 7년 후 1660년 다시 울산군의 하미면 삼동으로 환속되었고, 1681년(숙종 7) 다시 21년 만에 기장현으로 복귀되었다.

1831년(순조 31) 『경상도 읍지(慶尙道邑誌)』 발간 전후까지 하미면으로 불렸고, 1895년(고종 32) 기장군 하북면이 되었다. 1914년 기장군동래군에 편입되면서 하미면정관면[현 정관읍]·일광면·장안읍으로 나뉘면서 명칭이 바뀐 후 1973년 동래군이 폐군될 때 양산군 소속으로 있다가, 1995년 기장군부산광역시에 편입됨으로써 부산광역시 기장군 소속으로 변천되어 왔다. 조선 시대의 하미면은 지금의 기장군 장안읍, 일광면, 정관읍에 해당한다.

[의의와 평가]

하미면을 통해 조선 시대 부산 지역의 지방 제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08.20 항목명 검토 요함 하미면이 기장현 외에 또 있었는지?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