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2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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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載一 |
영어음역 | O Jaeil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하유식 |
성격 | 사회주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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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 남 |
대표경력 | 민주주의민족전선 부산시위원회 총무 부장 |
수학 시기/일시 | 1930년 3월 - 서울 중동학교 졸업 |
수학 시기/일시 | 1936년 -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39년 11월 2일 - 동래일신여학교 재단조성기성회 간부로 선출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 재정 부장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2월 - 민주주의민족전선 경남 대표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 월북하여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공부 부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54년 - 함경북도인민위원회 상업부 부장 역임 |
출생지 | 오재일 출생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
거주|이주지 | 오재일 거주지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
학교|수학지 | 중동학교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오재일 활동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
[정의]
미군정기 부산 동래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자.
[가계]
아버지는 동래은행을 창립하고 동래일신여학교 초대 이사장을 지낸 동래 지역의 부호이자 유지였던 오태환(吳泰煥)이다.
[활동 사항]
오재일(吳載一)은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중동학교를 다녔다. 서울에서 유학하는 남녀 학생으로 조직한 재경동래학생친목회에 참여하였다. 1926년 7월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농촌 계몽을 목적으로 송원찬, 김규엽(金圭燁), 윤상규, 최상기, 정인수, 장사노 등과 함께 동래 각 면을 순회하는 강연을 하였다.
오재일은 학창 시절 1928년 중앙기독교청년회가 주최한 권투 선수권 대회와 1928년 동아일보사 주최 전국 축구 대회, 1929년에는 농구 대회에 참가하는 등 운동에 소질을 나타냈다. 1930년 3월 우등생으로 서울 중동학교를 졸업하였고, 1936년 봄에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오재일은 일본에서 노동조합전국협의회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1938년 무렵 부산부 대교동에 위치한 조선상선회사 상무직에 올라 경제계에 진출하였다. 전무로 재직할 때인 1939년 1월 조선상선회사는 경남도 당국으로부터 영업 기한 연기 불허가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오재일은 이후 아버지의 교육 사업을 도와 교육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9년 7월 동래일신여학교의 경영권이 호주선교회로부터 경남노회(慶南老會)의 동래일신 후계재단으로 인수될 때, 동래 유지 김명오와 함께 재단 측 대표로 활동하였다. 1939년 11월 2일에는 동래 읍민 유지 대회에 참여하여 동래일신여학교 존속 문제에 대해 토의하였다. 이때 조직된 동래일신여학교 재단조성기성회에 김병규, 김명오, 추봉찬, 엄진영, 김봉상, 최시봉 등과 함께 간부로 선출되었다. 이후 오재일은 일제의 고등여학교령에 의하여 1940년 4월 20일 정식 인가를 받은 동래고등여학교의 상무 이사로 재직하였다.
오재일은 1945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재정 부장에 선출되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위원회로 전환된 후, 경상남도 인민위원회에서도 재정 부장을 역임하였다. 조선인민당 부산지부 부위원장과 동래군지부 지부장, 조선인민당 중앙 위원 및 재정 부장도 역임하였다. 1946년 남조선노동당 경남도당 위원장을 지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 대회 경남 대표와 민주주의민족전선 부산시위원회 총무 부장을 지냈다.
1946년 4월 19일 민간단체가 정부 행세를 하였다는 이유로 피검되었다. 그와 함께 피검된 인물은 조선공산당 부산위원회 서종덕, 도인민위원회 노백용·윤일·강영순, 인민위원회 부산지부 이성줄·신덕균, 조선인민당 도지부 석영하·전두만·이종문, 조선인민당 시지부 이상수·김상기, 경남농민조합 박종범, 부산부녀동맹 노남교,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 지한종, 청년동맹 이영근, 경남 민주주의민족전선 김동산, 전재동포구호협회 임용길·임수길·박승도·고건승 등이었다. 오재일은 1948년 월북하여 북한 최고인민위원회 상공부 부장을 지냈다. 1954년 함경북도인민위원회 상업부 부장을 역임하다가 1958년에 출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