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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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石器時代 |
영어의미역 | Neolithic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김은영 |
[정의]
기원전 5000년대 전반부터 기원전 1500년 무렵까지의 부산 지역 석기 시대의 최종 단계.
[개설]
구석기 시대 말부터 전 지구적 규모에서 온난화가 시작되고 신석기 시대가 되면 해수면이 급속하게 상승한다. 그 결과 부산 지역은 낙엽 활엽수가 우세하고 내만에는 다양한 해양 생물이 서식하는 온난 습윤한 환경으로 바뀌어 인간의 거주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수가리 유적 조개더미에서 나온 산호, 부산 동삼동 패총[사적 제266호]에서 나온 말전복 등은 평균 기온이 현재보다 더 따뜻한 시기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신석기 시대는 기후의 급격한 온난화에 의한 동식물 등 생태계 변화에 인간 사회가 적응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부산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자연 환경 덕분에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신석기 시대 유적과 유물이 풍부하여 그러한 사회 변화를 상세히 알 수 있는 지역이다.
부산의 신석기 시대 유적은 20여 곳이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 낙동강 하구 연안이나 내만 지역, 가덕도와 영도 등 주로 섬에 분포하는 조개더미 유적이지만, 드물게 구릉이나 산의 정상부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이 유적들에서는 조개더미·집자리[집터]·화덕 자리·무덤 등의 흔적과 음식물을 조리하고 저장하는 토기, 땅을 파거나 나무를 자르고 사냥이나 어로에 사용하는 석기·골각기 같은 각종 생활 용구, 조개껍데기·동물 뼈·생선뼈 등 먹을거리, 장신구, 토우 등의 유물이 발견된다. 이들을 통해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이 다각도로 복원되는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자연 환경과 문화상]
1. 토기
기후의 온난화로 형성된 낙엽 활엽수를 위주로 하는 풍부한 삼림은 신석기 시대의 살림을 지지하는 중요한 식량 자원이 되었다. 특히 도토리는 신석기 시대에 가장 많이 이용된 식물성 식량 자원으로, 작은 구덩이를 파서 물에 담가 도토리의 탄닌 성분을 우려내거나 저장해 두었다.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는 갈돌과 갈판은 도토리 같은 식물성 식량의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는 데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식물성 자원의 이용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토기의 발명이다. 토기의 사용으로 도토리 같은 다양한 식물질 식료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식생활이 안정되었다. 음식을 익혀 먹는 것은 살균과 영양 흡수가 잘 되도록 도와주어 인류의 건강 유지에도 도움이 되었으며, 저장 용기로서의 기능은 식량의 저장과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였기 때문에, 토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 중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부산의 신석기 시대 토기는 밑이 납작하거나 둥근 바리가 기본적인 형태이다. 바리의 아가리 부근 안팎에서는 음식물이 불탄 흔적이 종종 관찰되는데, 이는 조리용으로 사용된 증거이다. 한편,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아가리 지름이 60㎝ 이상인 대형 바리는 필시 저장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목이 있는 항아리와 깔때기 모양 토기, 귀때 토기 등 특수한 목적으로 사용된 토기와 붉은 칠을 한 토기 등도 있다. 이러한 신석기 시대의 토기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만들어지고 매우 다양한 문양이 새겨지기 때문에 고고학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2. 생업
동물상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주요 사냥 대상이었던 맘모스나 털코뿔이, 물소와 같은 거대 포유동물이 멧돼지나 사슴과 같은 몸집이 작고 빠른 동물로 대체되고, 물고기·조개·해초류·해수(海獸)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이 단백질 공급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활을 발명하여 동물 사냥에 이용하였으며, 결합식 낚싯바늘·작살·빗창·그물추 등 다양한 어로 도구를 만들어 냈다. 조개더미에는 사냥과 어로의 대상이 되었던 이 동물들의 잔해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부산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농경 기술도 알고 있었다. 부산 동삼동 패총의 집자리에서는 기원전 3300년 무렵의 불탄 조와 기장이 발견되어, 이 무렵부터 초기 농경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빗살무늬 토기, 말안장 모양의 갈돌·갈판과 돌보습 등의 도구들이 초기 농경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중·서부 지역으로부터 전해져 왔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 말까지도 강가나 바닷가에서 생활하고 조개더미를 남긴 것으로 보아 농경의 비중이 어로나 사냥, 채집을 대체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3. 주거와 패총
신석기 시대의 생업 경제상의 변화는 정착 생활로의 전환과 궤를 같이한다. 움집은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정착 생활을 영위하였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으며, 부산에서는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기원전 3500~3000년의 움집이 발견되었다. 가덕도 신석기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 이른 시기의 집단 무덤으로 추정되는 인골군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인골은 팔다리를 곧게 펴고 있는 신전장[伸展葬]과 함께 팔다리를 굽히고 있는 굴장[屈葬]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인골 주위에는 많은 양의 토기와 돌도끼, 고래 갈비뼈, 장신구, 붉은색 안료 등의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 무덤의 형태는 봉분이 없는 얕은 움무덤[土壙墓]이나 땅을 파지 않고 안치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장신구에는 흙으로 구워 만들거나 돌을 갈아 만든 귀고리, 동물 뼈로 만든 뒤꽂이, 조개껍질·매 발톱·상어 등뼈와 이빨·멧돼지 어금니·돌·옥 등으로 만든 목걸이, 조개껍질로 만든 팔찌 등이 있다. 이러한 장신구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속의 미의식뿐 아니라 신앙이나 주술 같은 정신세계도 엿볼 수 있는 유물이다.
신앙이나 의례 행위에 관련된 유물은 장신구 외에도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조개 가면, 곰 모양 토우가 있다. 신석기 시대 이른 시기에 우리나라 동·남부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는 토우 중 하나인 곰 모양 토우는 당시 사람들의 곰 숭배 신앙을 잘 보여 준다. 조개 가면은 축제나 종교적인 의례 행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석기 시대의 해양 교류]
부산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부산 이외 지역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도 하였다. 부산 동삼동 패총을 비롯한 여러 유적에서는 화산 지대인 일본 규슈 지역에서 입수한 것으로 추정되는 흑요석 또는 흑요석제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다량 출토된 일본의 죠몽 토기[繩文土器]와 함께 일본 규슈 지역과의 활발하였던 교역을 잘 보여 준다.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배가 출토되었고,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는 배 모양 토기가 출토되었다. 신석기 시대에 이미 먼 바다를 항해하는 기술을 터득하여, 일본 규슈 지역과의 교류도 가능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교류의 담당자는 바다를 생업 기반으로 하는 어로민이었다는 의견이 있다.
[신석기 시대의 사회상]
신석기 시대에는 청동기 시대 이후에 나타나는 인간 노동력의 동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규모 토목, 건축 행위는 출현하지 않았다. 집자리 규모, 취락 양상, 무덤 부장품, 장신구나 의례, 교류 관련 문물에서는 변화된 자연에 적응하면서 영위한 소박한 일상생활과 성별이나 생업상의 분업에 의한 차이만 엿볼 수 있을 뿐, 부의 축적이나 계급 분화와 같은 현상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것이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사회의 하나의 특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