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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공제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026
한자 禪友共濟會
영어의미역 Zen Friends Mutual Aid Association
분야 종교/불교,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연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교 단체
설립 시기/일시 1921년 12월연표보기 - 결성
해체 시기/일시 1925년 5월 1일 - 활동 정지
이전 시기/일시 1924년 4월 - 본부 김천 직지사로 이전
개칭 시기/일시 1933년연표보기 - 선우공제회에서 선리참구원(禪理參究院)으로 전환
최초 설립지 선우공제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주소 변경 이력 선우공제회 - 경상북도 김천 직지사

[정의]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에 있었던 불교 단체.

[개설]

1921년 선학원(禪學院) 설립 이후 선승들의 결사(結社)인 동시에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계(契) 모임의 성격을 지닌 조직체이며, 범어사 주지 오성월(吳惺月), 승려 김남전과 백용성 등을 비롯한 범어사의 인사들이 깊숙이 개입하였다.

[설립 목적]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는 수좌(首座)들이 철저한 수행을 하기 위해, 선풍을 진작하기 위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립자애(自立自愛)하고 나아가서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강조하였다. 이는 국권 상실, 일본 불교 침투, 식민지 불교정책이 빚어진 불교의 현실 모순을 자주, 자립의 정신으로 극복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변천]

1920년 경 수덕사의 선승 송만공, 범어사 포교당[서울] 포교사 김남전, 석왕사 포교당[서울] 포교사 강도봉 등이 일제의 사찰령에 구속받지 않는 공간을 만들려는 구두 합의로 선학원이 설립되었다.

1921년 5월 15일 석왕사 포교당에서 선학원 건립 자금을 모으기 위한 보살계 계단을 개최하였는데, 이때 범어사 주지 오성월인사동에 있었던 범어사 포교당을 처분하여 그것을 건립 자금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곧 김남전[2,000 원], 강도봉[1,500원] 등이 자금에 동참하였다. 승려 및 신도들이 제공한 지원금 2만 7,000원으로 선학원 공사를 하였고, 그해 11월 30일 준공하였다. 이 때 세금 관계로 범어사 명의를 차용하였다. 특히 선학원 창건 상량문에는 건축을 주도한 대중 명단이 있는데, 오성월, 김석두, 김남전, 백용성범어사와 연고가 있는 인명이 전하고 있다.

선학원 준공 직후 선승들의 결사인 동시에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계 모임의 성격을 지닌 조직체를 결성한 것이 선우공제회이다. 1924년 4월에는 선우공제회의 본부를 직지사로 이전하였다가, 1925년 5월 1일에 중앙의 선학원범어사 포교소로 전환되면서 선우공제회의 활동은 정지되었다. 한편 1933년 3월 전조선 수좌 대회(全朝鮮首座大會)에서 송만공, 이탄옹, 김적음을 비롯한 9명의 수좌들은 수좌 대회에서 선우공제회를 재단 법인 선리참구원(禪理參究院)으로 전환하기 위한 발기를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선우공제회의 창립총회에 참여한 수좌는 송만공, 오성월, 박학명, 이설운, 김남전 등 35명이다. 발기인 오성월을 비롯한 80여 명의 수좌들은 철저한 수행을 하기 위해, 선풍을 진작하기 위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립자애하고 나아가서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강조하는 취지서를 발표하였다.

선우공제회의 본부는 중앙인 선학원에 두고, 중앙 조직은 서무부, 수도부, 재정부를 두었다. 지방 지부는 선원이 19처 사찰에 두기로 했으며 공제회의 제반 사항을 의결하는 의사부를 설치하였다. 공제회의 경비는 수좌들의 의연금과 희사금으로 충당하고 각 지부 선량(禪良) 중 2할과 매년 예산액의 잉여금을 저축하여 공제회의 기본 재산으로 설정하고 각 선원을 진흥하기로 하였다.

1924년 경 총 365명의 회원이 있었으나, 재정적인 어려움이 뒤따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분명치 않으나 1924년 4월에는 본부를 경상북도 김천의 직지사로 이전하였고, 1925년 5월 1일에 중앙의 선학원범어사 포교소로 전환되면서 선우공제회의 활동은 정지되었다. 선학원의 창건, 선우공제회 설립에 범어사 출신 승려가 그 핵심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현황]

1924년경에는 통상 회원 203명, 특별 회원 162명 합계 365명의 회원이 소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선우공제회선학원에 참여한 인물들의 출신과 성향은 대부분 불교의 천양 의식이 투철하고, 일제의 사찰 정책에 비판적이며, 항일 불교 활동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국권 상실, 일본 불교 침투, 식민지 불교 정책이 빚어진 불교의 현실 모순을 자주, 자립의 정신으로 극복하겠다는 승려들의 조직체였다. 당시 범어사선풍 진작 운동이 근대 불교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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