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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067
한자 寺刹契
영어음역 Sachalgye
영어의미역 Traditional Private Fund Popular among the Buddhists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집필자 정미숙

[정의]

조선 후기부터 1940년대까지 부산 범어사에서 보사(補寺)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경제 활동.

[개설]

범어사는 조선 후기부터 1947년에 이르기까지 60여 건의 사찰계(寺刹契)를 운영하였다. 사찰계는 갑계(甲契), 문도계(門徒契), 청계(廳契), 칠성계(七星契), 지장계(地藏契), 만일회(萬日會), 불량계(佛糧契) 등 다양하였다. 범어사의 갑계는 25건의 예가 보인다.

[종류]

갑계는 동갑(同甲)을 구성원으로 하는 것이지만 운영상 계원의 폭은 좀 더 확대되기도 하였다. 갑계를 결성하는 목적은 계금으로 마련된 재원을 통한 사찰 중건이나 불전 공양(佛殿供養) 등에 있었다. 갑계의 보사 활동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되어 범어사의 재정 확보에 큰 역할을 하였다.

문도계는 같은 스승을 모신 제자들이 계금을 적립하여 스승의 사후 장례 비용 또는 스승의 재(齋)를 주관하는 비용을 마련하였다. 이들은 사찰의 중수에도 참여하였다. 범어사의 문도계는 1727년부터 1906년까지 12개의 사례가 있다. 1727년(영조 3) 혜원존한양자문계(惠遠存漢兩字門契)의 경우 스승 해운 장로(海運長老)의 사후를 대비한 제자들의 계로서 스승의 말을 따라 장안사범어사의 법당 중수에 계금을 시주하였다.

청계는 판청(判廳)이나 서청(書廳) 등에서 조직하여 보사 활동을 하는 것이다. 사찰 내의 기강을 잡는 기구인 판청이나 사찰의 공문서를 작성하는 기구인 서청은 큰 사찰에만 존재한다. 범어사는 5건의 청계 활동이 보인다.

칠성계는 범어사에서는 3건의 자료가 있었다. 칠성 신앙을 배경으로 하지만 다른 사찰계와 마찬가지로 보사 활동이 주된 목적이었다.

1862~1874년의 지장계는 천성산 내원암의 해령 화상(海嶺和尙)과 단월들이 백민(百緡)을 출자하여 결성하였고 뒤이어 운암 장로(雲庵長老)가 10명 정도의 신도를 모아 유지하였다. 지장계는 지장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기원하여 계를 결성하고 계금을 통해 수행에 필요한 기물을 마련하거나 보사 활동에 시주하였다. 1905년 지장계는 무오갑계로부터 백 냥을 지원받기도 하였다.

만일회는 일종의 염불계로서 범어사에는 3건의 만일회가 활동하였다. 1883년 만일회가 대웅전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5냥을 시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불량계는 보사 활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범어사에서는 불량계라는 명칭 대신 시주계(施主契), 불정계(佛亭契), 나한계(羅漢契)라는 이름이 있다. 1722년(경종 2)의 시주계는 비로자나 삼존상을 개금, 중수하고 금동 관음상 1기를 새로 조성하는 과정에 백금(百金)을 헌납하였다.

이외에도 범어사에는 유형이 명확하지 않은 10여 건 이상의 활동 사례가 전한다. 사계(射契), 어회계(漁會稧), 도종계(都宗契), 어산계(漁山稧)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어산계는 1913년 대웅전 번와(飜瓦)를 비롯하여 명부전과 팔상전 등을 중수하고 어산교(魚山橋)를 건립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부터 활발하게 전개된 이러한 사찰계 활동이 범어사의 경제적 기반 확보에 큰 역할을 하였다. 범어사는 이를 토대로 각종 선원(禪院)과 결사(結社)를 조직하여 범어사의 사격(寺格)을 높일 수 있었다. 이후 범어사는 일본 불교의 침략에 맞서 한국 불교의 전통을 지키는 중심이 되었으며, 한국 선종의 본찰(本刹)로서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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