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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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禪學院 |
영어공식명칭 | Seonhakwon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화선 |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불교 기관.
[설립 목적]
일본 불교의 침탈에 대응하여 범어사를 중심으로 한 임제종(臨濟宗) 종무원은 이후에 동래(東萊), 초량(草梁), 대구(大邱), 경성(京城) 네 곳에 포교당(布敎堂)을 세우고 임제종 간판을 걸었다. 1912년 11월 임제종은 범어사 등지에 두었던 조선임제종 임시 사무소를 이후 조선임제종 중앙포교당(朝鮮臨濟宗中央布敎堂)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사동(寺洞) 28통 6호로 이전하였다. 여기에 불법(佛法)의 정통인 선리(禪理)를 탐구하고, 선풍(禪風)을 선양함으로써 불교 중흥을 이룩하고자 조선불교선학원(朝鮮佛敎禪學院) 본부를 설립하였다.
선학원은 「사찰령」 발표 이후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해 창설된 선종의 중앙 기관이다. 처음 발기인은 남전(南泉), 도봉(道峰), 석두(石頭) 등 세 승려가 주도하였지만, 「선학원 창건 상량문」의 발기인 명단에는 용성(龍城), 성월(惺月), 도봉(道峰), 석두(石頭), 남전(南泉) 등이 있다. 당시 남전은 범어사 경성포교당의 포교사였으며, 석두 역시 범어사 승려였다. 총계 2만 5,500원의 자금으로 1921년 8월 10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불과 3개월 만인 11월 30일에 준공하여 입주하였다. 1926년에는 재정 빈곤으로 범어사의 포교당으로 전환되었다. 이때에는 범어사가 운영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1934년 12월에는 조선총독부로부터 재단 법인 설립 허가를 받아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변경되었으며, 선리의 수행과 연구에 의하여 승려 및 일반 신도에게 정신적 수양을 베풀기 위한 각종 시설을 하려는 것이 법인 구성의 목적이었다. 선학원은 창건 이후 선학원 자체에 의한 자력 구제 방안을 꾸준히 강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재단 법인의 설립으로 명실 공히 중앙 선원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1934년 12월 30일 선학원 계열의 수좌, 조선불교 선종의 종헌이 제정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조계종· 선학원 관계가 재정립되어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다시 개원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일제 강점기 선학원은 선종의 부활과 자립 활로를 위한 활동을 하였으며, 선승들의 결사(結社)이자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계(契) 모임의 성격을 지닌 선우공제회(禪友共濟會) 운동을 주도하였다.
[현황]
1934년 재단 법인으로 변모한 후 현재까지 우리나라 불교의 중요한 기관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한국 전통 불교의 핵심인 선(禪)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확인할 수 있고 여기에 범어사와 범어사 승려가 큰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