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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포교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718
한자 梵魚寺布敎堂
영어의미역 Beomeosa Pogyodang Temple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진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찰
창건자 범어사
건립 시기/일시 1926년 5월 1일 - 선학원에서 범어사 포교당으로 전환
개칭 시기/일시 1931년 1월 21일연표보기 - 범어사 포교당에서 선학원으로 재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21년 - 선학원으로 건립
최초 건립지 선학원 -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40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에 있었던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소속 포교당.

[건립 경위 및 변천]

범어사 포교당은 정법선리(正法禪理)로 한국 전통의 선과 불조정맥(佛祖正脈)을 중흥하는 것을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1911년 일제의 한국 불교에 대한 사찰 정책의 근간인 「사찰령」을 선포하여 일제는 조직적으로 한국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조선 불교계는 임제종 운동을 비롯하여 전통 불교를 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김남천(金南泉), 강도봉(姜道峰), 김석두(金石頭) 세 승려는 사재를 내어 정법(正法)과 선리(禪理)를 포교하고 불조(佛祖)의 정맥(正脈)을 계승하여 한국 불교의 본래 모습을 지키기 위해 1921년 선학원(禪學院)을 발기하였다. 1922년 3월 말 오성월(吳惺月), 김남천, 백학명(白鶴鳴) 등 79명의 선객들이 발기하여 ‘선우공제회’를 선학원에 설립하여 한국 불교의 전통을 이어가는데 크게 이바지 하게 되고 자연히 전국 선원과 선사들의 중심 기관이 되었다. 하지만 선원을 찾는 승려 수가 많이 늘게 되어 재정적 부담으로 인하여 선학원선우공제회는 운영에 크게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1926년 5월 1일 선학원에 연고권을 갖고 있었던 범어사 포교당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활동 사항]

범어사 포교당은 1931년 1월 21일 다시 선학원으로 재건되었으며 범어사는 이곳을 포교당으로 운영하면서 선학원이 재건될 때 장소 제공과 함께 재정적으로도 기여하였다. 따라서 범어사 포교당은 선종의 부활과 자립의 활로를 열기 위한 활동의 토대가 되었으며 1934년 재단 법인으로 변모한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불교의 중요한 기관의 하나로 활동해 오고 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한국 전통 불교의 핵심인 선(禪)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범어사범어사 승려의 큰 역할과 노력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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