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711 |
---|---|
한자 | 梵魚寺東萊布敎堂 |
영어의미역 | Beomeosa Dongraepogyodang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62[칠산동 239-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진모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 있었던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 소속 포교당.
[개설]
피폐해진 대한 불교와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범어사는 승려 경허(鏡虛)를 조실로 모시고 각 암자와 큰 절에 선원을 개설, 30 본산의 하나인 범어사를 선찰 대본산으로 승격시켰다. 또한 오늘날 대한불교 조계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임제종 본부를 두어 백용성(白龍城), 한용운(韓龍雲) 등 불교계의 큰 인물들이 주석하면서 대한 불교의 중추적인 위치에 있었다. 높아진 사격과 경제적인 뒷받침으로 인하여 먼저 범어사 동래포교당을 설립하여 동래 지역의 불교 교화, 항일 운동, 무산 자녀 교육 등으로 대한 불교 중흥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산중 불교에서 벗어나 불교의 대중화로 대한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1910년 11월 현재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동래구청 인근]에 범어사 동래포교당을 설립하였다. 후에 학소대(鶴巢臺)로 옮겨갔으며, 1954년 불교 정화 운동 전까지 유지하다가 비구 측에 인계하였다. 이 학소대 자리에 법륜사(法輪寺)가 들어서게 되었다.
[활동 사항]
범어사 동래포교당은 불교 교화를 전개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범어사 3·1 운동 당시 거사 모의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야학교·유치원 및 불교 일요 학교 등으로 운영되어 동래 지역의 높은 관심을 갖게 하였다. 이와 같이 범어사 동래포교당은 교육 운동뿐만이 아니라 지역 사회 운동 장소로도 매우 이용되었다. 그리고 범어사 동래포교당이 경영한 싯달야학교[1921년]는 동래불교청년회의 지원으로 무산 아동 교육에 큰 공헌을 하였다. 포교당 개설 이후 학생 수가 계속적으로 증가하여 1923년에는 교실을 신축하여 야학을 확대시켰으며, 학생 수가 무려 236명이나 되어 당시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1929년 당시에는 4년제로 운영되었으며 일제 강점기 말기까지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