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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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Renaissance |
이칭/별칭 | 루네쌍스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3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세 |
[정의]
6·25 전쟁 때 부산 지역 예술인의 사랑방이자 미술 전시관 역할을 하였던 다방.
[개설]
다방이 문화 공간의 역할을 한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6·25 전쟁 시기에 부산의 다방은 독특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을 피해 임시 수도 부산으로 몰려온 문화 예술인들의 아지트이자 창작의 공간이었으며, 그림 전시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에는 서울과 같은 공립 미술관과 백화점 화랑 등 전시 공간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방은 단지 회합의 공간일 뿐 아니라 화랑[Gallery]이기도 하였다. 6·25 전쟁 초기부터 밀다원 다방, 금강 다방에서 미술 전시회가 개최되기 시작하여 점차 부산 일대의 다방은 전문 화랑으로 기능하기 시작하였다.
[변천]
르네상스[당시 간판의 표기는 루네쌍스]에서도 6·25 전쟁 당시 각종 개인전과 더불어 동인전이 개최되었다. 1952년 3월 르네상스에서는 마산 출신의 작가 문신(文信)의 개인전이 개최되었다. 5월에는 후반기의 동인인 문신, 이준, 월남 작가 한묵(韓默), 김훈, 권옥연(權玉淵) 등이 참여한 후반기 동인 창립전이 열렸다. 12월에는 6·25 전쟁 중 종군 화가로 활동했던 양달석(梁澾錫), 임완규(林完圭) 등이 참여한 제4회 해군 종군 화가전이 개최되었다. 특히 르네상스는 이중섭(李仲燮)의 첫 그룹전인 제1회 기조 동인전이 열린 곳이기도 했다. 1952년 12월 22일부터 1주일간 열린 1회 기조 동인전에는 이중섭, 손응성(孫應星), 한묵, 박고섭, 이봉상 등이 참여하였다. 여기에는 이중섭이 2점, 이봉상이 6점, 한묵이 6점, 박고석이 5점, 손응성이 1점을 출품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외에 르네상스를 전시장으로 한 중요 전시로는 1953년 3월에 창립된 토벽 동인전의 창립전이 있다. 토벽은 ‘토박이’에서 비롯한 말로, 그 명칭이 보여주듯 토박이 부산 작가들의 동인 그룹이었다. 1953년 3월에 개최된 토벽 동인전의 창립전에는 서성찬(徐成贊), 김영교, 김종식(金種植), 임호(林湖), 김윤민(金潤玟)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피난지인 부산에 몰려와 있던 중앙 화단의 미술인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하기 위하여 ‘향토적 서정성’을 내세웠다. 따라서 토벽 동인전은 부산 지역의 1세대 미술인들이 지녔던 향토적인 미의식과 지역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을 보여 주었다. 이후 2회 토벽 동인전은 10월 휘가로 다방에서 열렸으며, 3회는 창선동의 실로암 다방에서 개최되었다.
1953년 8월 수도의 환도 이후에도 오랫동안 부산에서는 다방이 전시 공간의 역할을 하였고, 1970년대 이후에 가서야 화랑이 미술 전시의 중심이 되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역시 오랫동안 지역 미술인들의 작품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구성]
르네상스는 부산시 중구 대청동 3가에 있었다. 전쟁 중 부산에는 다방이 급속히 늘어나고 문화 예술인의 활동 거점이 되었는데, 이러한 다방이 밀집되었던 곳은 광복동과 남포동이었다. 르네상스는 이들 밀집 지역과는 다소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르네상스의 규모나 내부 구조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여러 차례의 단체전이 개최된 것으로 보아 꽤 큰 규모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하지만 당시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 다방들이 모두 ‘너무도 어둡고 좁은 다방의 안쪽으로 길게 들어간 벽면……. 이어서 어디건 도무지 전람회장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묘사된 것을 보면, 오늘날의 화랑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