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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281
한자 大羅里聚落遺蹟
영어의미역 Remains of Daedari Settlement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산15-1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안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2년연표보기 -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 4월~12월연표보기 -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5년 5월~2008년 6월연표보기 -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산15-1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에 있는 청동기 및 삼국 시대의 취락 유적.

[개설]

대라리 취락 유적은 대단위 복합 유적으로, 이 지역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이다. 삼국 시대는 Ⅳ지구의 6열 목책을 중심으로 목책 설치 전[삼국 1기], 목책 공존[삼국 2기], 목책 폐기 이후[삼국 3기]로 나누어진다.

대라리 취락 유적이 부산~울산 간 고속 국도 건설 구간에 포함되어 2002년 창원대학교 박물관이 지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삼국 시대의 유물이 다수 채집되었다. 이에 2004년 4월부터 12월까지 경남문화재연구원이 시굴 조사를 실시하여 다수의 유구를 확인하였다. 또한 2005년 5월부터 2008년 6월까지 경남문화재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수많은 유구를 확인하였다.

[위치]

대라리 취락 유적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산 15-1번지 일원에 있으며, 남서쪽의 양당산[282m]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구릉 중턱[약 100~130m]에 위치한다. 또한 대라리 취락 유적은 서동향의 구릉 및 곡부를 남북 선상으로 횡단하며, 기장읍 중심지의 남쪽에 있는 청강리대라리의 경계 지점에 있다. 기장읍에서 해운대구 송정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국도에 위치한 기장군 기장읍 청강리 무곡 마을의 배후 산지 일대에 해당된다.

[형태]

대라리 취락 유적은 동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구릉과 곡부를 남북 선상으로 횡단하며, 조사 구역 내에는 크게 4개의 구릉과 3개의 곡부가 있다. 발굴 조사 이후 남쪽의 구릉부터 Ⅰ지구, Ⅱ지구, Ⅲ지구, Ⅳ지구로 명명하였다. Ⅰ지구에서는 삼국 시대 덧널무덤과 돌덧널무덤 등의 고분군, Ⅱ·Ⅲ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 수혈 건물 터 및 삼국 시대 수혈 건물 터, 수혈 유구 등의 생활 유적, Ⅳ지구에서는 목책, 대형 굴립주 건물 터, 제사 유적 등이 확인되었다.

Ⅰ지구에서 확인된 덧널무덤은 평면 형태가 대부분 세장방형이다. 이러한 세장방형 덧널무덤은 낙동강 동안의 경주 황성동 고분군을 비롯하여 포항 옥성리 고분군, 울산 하대 고분군·울산 양동 고분군·울산 중산리 고분군에서 다수 확인되었다. 또한 철기류 중에서 유자이기(有刺利器)가 다수 출토되는 점은 낙동강 동안의 포항 옥성리 유적, 경주 황성동 유적, 경주 정래동 유적, 울산 중산리 유적, 울산 다운동 유적, 울산 하대 유적과 출토 양상이 동일하다.

한편 조사 지역에서는 소위 ‘경주형 덧널무덤’이라 불리는 세장방형의 동혈 주부곽식(同穴主副槨式) 덧널무덤과 ‘김해식 덧널무덤’으로 지칭되는 이혈 주부곽식(異穴主副槨式) 덧널무덤이 모두 확인되었다. 두 덧널무덤의 입지를 살펴보면 확연히 대별되는데, 동혈 주부곽식 덧널무덤은 구릉 평탄부에, 이혈 주부곽식 덧널무덤은 북사면에 조영되어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7호 덧널무덤의 부곽 남동 모서리에서는 회청색 경질의 조형 토기(鳥形土器)가 1점 출토되었다. 이 조형 토기는 소략화된 깃을 가진 점, 꼬리 깃을 표현한 점, 3개의 독립된 다리를 부착한 점, 전체 높이에 비해 몸통의 길이가 긴 점 등의 여러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볼 때, 5세기 때 경질 소성의 전형적인 조형 토기보다 더 이른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대라리 취락 유적의 최북단에 있는 독립 구릉인 Ⅳ지구의 정상부에서는 내부에 추정 대형 굴립주 건물 터 및 제사 유구와 이를 타원형 모양으로 둘러싸고 돌아가는 최대 6열의 삼국 시대 목책 열이 조사되었다. 전체 목책의 규모는 외곽 목책 열을 기준으로 장축 70m, 단축 60m 정도이며, 주혈의 개수는 350여 개에 이른다. 또한 목책의 출입로가 남사면 중앙과 남동 사면으로 열려 있어 동선이 제사 유구 및 추정 대형 굴립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현황]

대라리 취락 유적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기 이전에는 수목이 우거져 있는 상태였으나, 현재는 부산~울산 간 고속 국도 개설로 인하여 원형을 파악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대라리 취락 유적 중 Ⅳ지구는 동에서 서로 뻗어 내린 구릉이 다시 솟아 오른 독립 구릉의 형태로, 조사 구역의 각 구릉이 내려다보이고 구릉 정상부에서는 기장 일대 및 바다가 한눈에 조망된다. 이러한 지형을 선택하여 고분을 축조하고, 다른 구역에는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였으며, 특히 이 모든 공간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제사 공간을 만들고 목책을 설치하였다. 따라서 대라리 취락 유적은 삼국 시대 기장의 최고 지배 집단의 묘역[Ⅰ지구], 생활 공간[Ⅱ·Ⅲ지구], 제사 공간[Ⅳ지구]이 일정 공간의 구릉 일대에 형성되어 당시 중심지의 상황을 보여 준다. 또한 문헌에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은 기장의 고대 역사 복원에 중요한 고고학적 발굴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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