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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민주민족청년동맹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111
한자 慶尙南道民主民族靑年同盟事件
영어의미역 Gyeongsangnam-do Democratic National Youth Alliance Incident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군사 법정 재판
관련인물/단체 권종현|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 맹부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0년 11월연표보기 -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 맹부 조직
종결 시기/일시 1962년 4월 21일연표보기 - 상소 기각으로 확정 판결
발단 시기/일시 1960년 6월 12일연표보기 - 민주민족청년동맹 결성
전개 시기/일시 1960년 8월 17일 - 8·15의 밤 개최
전개 시기/일시 1960년 9월 30일 - 황상규 추모제
전개 시기/일시 1960년 10월 30일 - 민족 통일 대강연회 개최
전개 시기/일시 1960년 12월 30일 - 문화인 망년회 개최
전개 시기/일시 1961년 3월 25일 - 2대 악법 반대 시민 궐기 대회 개최
전개 시기/일시 1961년 4월 18일연표보기 - 민족자주통일경남협의회 창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1년 2월 25일 -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창립
발생|시작 장소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종결 장소 혁명 재판소 - 서울특별시

[정의]

1960년 부산에서 결성된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맹부에 대해 군사 법정 재판이 일어난 사건.

[역사적 배경]

1960년 4·19 혁명 직후인 6월 12일 부산에서는 부산대학교 교수 이종률의 지도 아래, 자주적이고 통일 지향적인 청년 운동을 내걸고 민주민족청년동맹[약칭 민민청]이 결성되었다. 이후 민민청은 진보적 청년층을 조직화하여 자주적 통일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중앙 맹부를 서울로 옮기고 대구 등지에 지역 맹부를 조직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에 1960년 11월 부산에 있던 중앙 맹부는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맹부[약칭 민민청 경남맹부, 경남맹부]로 변경되었다.

[경과]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맹부부산진, 동래, 영도, 동구, 마산에 지구를 거느리고, 현직 교사와 기자를 비롯한 지역의 진보적 청년들을 다수 포괄한 민민청 최대의 지역 조직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경남맹부는 통일 운동을 확산시키고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60년 8월 17일 민주민족청년동맹은 광복동 미화당 음악실에서 ‘8·15의 밤’을 개최하였는데, 이는 문화 행사를 통해 4·19 혁명기의 정치의식을 대중적으로 녹여낸 것이었다. 9월 30일에는 미화당 음악실에서 의열단 창립자인 황상규의 추모제를 열어, 황상규의 일생을 통해 반제국주의 자주 의식을 대중적으로 고취시키려 하였다.

10월 30일에는 동광초등학교[현재의 광일초등학교]에서 ‘민족 통일 대강연회’를 개최했는데, 강연회에는 1,000여 명의 청중이 모였다. 강연 후 진행된 설문 조사에서는 남북 간의 교류와 협상을 통한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추구하는 남북 협상 통일론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를 통해 민주민족청년동맹은 통일 운동의 대중적 확산을 기하고,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의 형성을 위한 지역 여론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맹부는 1961년 2월 25일 서울에서 4·19 혁명 시기 최대의 통일 운동 단체인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가 결성되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4월 18일 혁신 정당 및 사회 단체와 함께 부전동 월세계 예식장에서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를 결성하였다.

1961년 2월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맹부는 굴욕적인 한미 경제 협정에 반대하는 ‘한미경제협정반대 경남공동투쟁위원회’에 참여하고, 3월 「반공임시특례법」과 「데모규제법」에 반대하는 ‘반민주악법반대 경남공동투쟁위원회’에서 2대 악법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교육 현장의 개혁 운동인 교원노동조합 합법화 투쟁을 지원하고, 지역 원로들의 통일 운동 단체인 경남노인회의 활동을 뒷받침하였으며, 부산 지역의 대학생 지하 서클인 후진성극복학생연구회와 고등학생 조직과 연계하는 등 부산·경상남도 지역의 민주 세력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던 암장그룹의 부산 지역 발표회를 후원한 것도 경남맹부였다.

[결과]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맹부의 통일 운동은 1961년 박정희 5·16 군사 정변 이후 설치된 군사 법정에서 북한을 이롭게 하는 범죄 행위로 처벌받았다. 1960년 12월 30일 경남맹부가 주최한 문화인 망년회와 1961년 3월 25일 부산역 광장에서 개최된 ‘2대 악법 반대 시민 궐기 대회’에서, 남북 간의 문화 교류와 남북 협상을 주장하고 민족 자주 평화 통일을 촉구하였으며 2대 악법의 제정을 반대한 것이 이유였다. 그 결과 경남맹부의 사무국장 권종현은 「특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4·19 혁명 시기에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맹부는 통일 운동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고 각계각층의 민주 세력을 후원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의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민족자주통일 경남협의회의 결성을 조직적으로 뒷받침하였다. 따라서 민주민족청년동맹 경남맹부의 활동을 ‘특수 범죄’로 처벌한 이 사건은 군사 정권이 4·19 혁명 시기의 통일 운동을 부정하고 죄악시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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