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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043
한자 加德船艙
영어의미역 Wharfs in the Gadeok Island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시대 조선/조선,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홍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박 수리 시설 및 계류 시설
제정 시기/일시 1930년대 - 용원-가덕도 도선 운항
폐지 시기/일시 2010년 12월 14일연표보기 - 부산신항 및 눌차만 매립 공사에 의해 항로가 폐쇄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용원 선착장에서 가덕도[선창, 눌차, 장항, 청성, 대항]를 매일 12회 정도 왕복 운행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0년 5월 20일 - 거가 대교 및 부산신항 공사로 매립 공사
비정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정의]

부산광역시가덕도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을 잇는 도선의 기점.

[개설]

가덕 선창은 근래까지 동력선이 운항하였지만, 과거에는 하루 1~2회 무동력선 돛배가 운항하였다. 이 가덕 선창을 통해 대항에서 잡은 가덕 대구, 눌차만의 바지락·굴, 천성의 미역, 성북의 양파 등이 인근 송정장[녹산동], 웅천장·용원장[진해]으로 실려 나갔다. 그리고 인근 오일장은 물론,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멀리 삼랑진장과 자갈치 시장까지 판로를 넓히는 등 배를 이용한 상행위가 왕성한 항구였다. 이 때문에 선창 뱃머리는 회항하는 돛배들의 장사진 속에서 떠나는 사람과 닿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형성 및 변천]

가덕 선창가덕도에서 육지에 가장 가까운 거리인 북단의 성북동[행정동으로는 가덕도동 3통]에 위치한 가덕도의 관문으로, 용원[녹산]과 가덕도를 연결하는 도선을 설치하여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돕고자 건립되었다. 가덕 선창이 있는 성북동 선창 마을은 1554년(중종 39) 조선 수군의 군항지가 되어 해안 방어를 담당했던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1871년(고종 8)에는쇄국 정책을 상징하는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의 ‘척화비’가 이 마을 뒷산 갈마봉 끝자락에 세워졌을 만큼 가덕도에서는 유서가 깊은 곳이다.

가덕 선창과 육지를 잇는 뱃길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진해 용원에서 처음 뚫렸다. 2010년 12월 14일 부산 신항 및 눌차만 매립 공사에 의해 항로가 폐쇄되기 전까지 선박이 창원시 진해구 용원 선착장에서 가덕도[선창, 눌차, 장항, 천성, 대항]를 매일 12회 정도 왕복 운행하였다. 2010년 5월 20일 가덕도 선창 마을과 눌차도를 연결하는 가교[길이 200m·폭 6m]와 연결 도로[길이 155m·폭 6m]를 개통하여 현재는 버스로 선창 마을까지 운행하고 있다.

[현황]

과거 가덕 선창에서 배를 고치거나 건조하던 곳의 흔적은 현재 매립 공사에 의해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가덕진이 있던 시절에는 병기고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성북동 천가초등학교가덕도 척화비가 전하고 있으며, 선창 서북쪽의 갈마봉에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축조한 가덕도 성북 왜성 터가 남아 있다. 현재 가덕 선창을 통해 육지와 섬을 잇는 역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선창 마을이라는 마을 이름을 통해 과거 포구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에는 1996년 12월 30일 주민들이 건립한 마을 유래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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