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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399
한자 加德島斥和碑
영어의미역 Anti-foreign Stele in Gadeok Island
이칭/별칭 가덕 척화비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가길 335[성북동 344] 천가초등학교 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71년연표보기 -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96년 - 천가초등학교 교정으로 이전·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1993년 2월 1일연표보기 - 가덕도 척화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가덕도 척화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
현 소재지 천가초등학교 -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가길 335[성북동 344]지도보기
원소재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선창 마을
성격 비|척화비
양식 민머리 비석
관련인물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재질 화강암
크기 145㎝[높이]|28㎝[너비]|16㎝[두께]
소유자 부산광역시
관리자 부산광역시 강서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기념물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에 있는 개항기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세운 척화비.

[건립 경위]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다가 평양 군민(軍民)에 의해 불타 버린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은 아시아 함대 사령관 J. 로저스에게 군함 5척으로 조선을 침공하게 하였다. 그 후 1871년(고종 8)에 일어난 신미양요에서도 강화도 수비병들의 방어 공격으로 미국이 퇴각함으로써 두 차례의 양요를 물리친 흥선 대원군은 전승 기세를 몰아 더욱쇄국 정책을 굳히고 척사(斥邪)의 결의를 전 국민에게 고취하기 위해 1871년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웠다. 가덕도 척화비(加德島斥和碑)는 이때 전국에 세운 척화비 가운데 하나이다.

[위치]

가덕도 척화비는 원래 가덕 포구[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선창 마을]에 있던 것을 1996년 천가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겼다. 소재지 주소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가길 335[성북동]이다.

[형태]

화강암의 민머리 비석으로 크기는 높이 145㎝, 너비 28㎝, 두께 16㎝이다.

[금석문]

비석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아니하는 것은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니 나의 자손만대에 깨우쳐 주라[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 萬年子孫]”고 적혀 있다.

[현황]

천가초등학교 내에 있어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다. 1993년 2월 1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었으며,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부산광역시가 소유하여 관리한다.

[의의와 평가]

섬인 가덕도흥선 대원군의 척화비가 있다는 것은 이곳 역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외침을 대비한 곳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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