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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342
한자 朝鮮建國準備委員會慶南支部
영어공식명칭 Gyeongsangnam-do headquarters the prepa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이칭/별칭 건준 경남지부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철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설립자 노백용
설립 시기/일시 1945년 8월 17일연표보기 - 발기 총회
해체 시기/일시 1945년 10월 5일연표보기 - 경상남도 인민위원회로 전환
최초 설립지 3·1유치원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정의]

해방 직후 부산에서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경상남도 지역 지부 조직.

[설립 목적]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여운형(呂運亨)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경상남도 지역 지부 조직이다. 결성 당시 채택한 ‘강령’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완전한 독립 국가의 수립’, ‘민주주의 원칙 준수’, ‘치안과 질서 유지’ 등이 그 설립 목적이었다.

[변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는 1945년 8월 17일 동래 동운관(東雲館)에서 개최된 발기 총회를 통해 결성되었다. 이 모임은 강대홍(姜大洪)·이상도·양성봉(梁聖奉)·최갑환(崔甲煥) 등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이날 발기 총회를 통해 그 본부를 초량의 3·1유치원에 둘 것과 일제 강점기의 관공리 또는 일제에 협력한 자를 제외한 항일 경력자로 참가 자격을 한정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또 위원장 노백용(盧百容), 총무부장 강대홍, 조직부장 박용선(朴容善), 기획부장 최천택(崔天澤), 조사부장 홍보용, 지방부장 신덕균(申德均), 교통부장 이재봉(李在鳳), 선전부장 박일형(朴日馨), 문화부장 박희창(朴禧昌), 건설부장 김칠성(金七星), 후생부장 이춘남, 치안부장 배덕수(裵德秀), 재정부장 오재일(吳載一) 등 경남지부 본부[이하 경남본부]의 간부와 기구를 구성하였다.

이상과 같이 결성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도 1945년 9월 6일 전국 인민 대표자 대회를 통해 중앙 조직인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인민 공화국으로 개편되면서 해소되자, 더불어 조직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10월 5일 도내 각 부·군에서 선출된 대의원 422명과 본부 위원으로 구성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상남도 대표자 대회가 부산 극장에서 개최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이날 반대파가 퇴장하는 약간의 진통 끝에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는 발전적으로 해소되어 경상남도 인민위원회로 변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는 그 강령에 맞게 치안 회복과 질서 유지, 식량 조사와 대책 수립 등의 행정 공백을 메우기 위한 활동에 주력하였으며, 더불어 관내 각 지역의 지부 조직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자주적 독립 국가의 수립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에는 경남본부 외에 부산부를 비롯하여 18개의 군·면·리에 지부가 결성되었다. 특히, 치안 부문에 있어서 그 활동이 두드러져, 1945년 9월 4일 경남본부의 치안부는 기존의 다양한 치안대를 통합하여 경남본부 연합치안대를 조직하였고, 9월 6일에는 이를 기반으로 부산치안사령부를 발족하였다. 또한 과거 일본인 소유였던 부산일보사와 부산방송국을 접수하여 우리말 신문과 방송을 개시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는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에서 비롯된 시민들의 자발적인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미군이 진주하기 이전부터 항일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행정이나 치안 유지 등을 담당한 것이나 단기간에 인민위원회로의 발전적 전환을 이루어낸 점은 그 역량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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