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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4202
한자 三國時代-農耕技術
영어의미역 Agricultural Techniques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도헌

[정의]

삼국 시대 부산 지역의 농업 기술.

[개설]

삼국 시대의 농경 기술은 당시의 농구(農具)와 경작지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삼국 시대가 되면 전용(專用) 철제(鐵製) 농구[농경 작업에만 사용하는 철제 도구]가 출현하고 축력(畜力)이 도입되는 변화가 발생하였다. 또한 경작지에서는 구획 단위가 넓어짐과 동시에 논밭을 전환하여 경작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삼국 시대에는 새로운 도구와 농사법을 채택하여 농경 생산력이 증대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삼국 시대의 전용 철제 농구로는 살포와 호미가 대표적이다. 살포는 논에 물을 공급할 때 논둑을 열고 막는 데 사용하는 연장인데, 살포의 확산은 관개(灌漑) 시설이 널리 보급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호미는 잡초를 제거하는 도구로, 호미의 존재를 통해 이전보다 많은 노동력이 제초 작업에 투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삼국 시대에는 관개 시설 확충과 제초 작업을 충실히 진행함으로써 같은 면적의 토지에서 더 많은 생산량을 얻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삼국 시대에는 쟁기가 보급되었는데, 소나 말 등의 축력을 이용하는 쟁기를 사용하면서 적은 사람으로도 넓은 경작지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쟁기의 도입은 노동력 절감을 통하여 농경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마을 단위로 진행하던 농경 작업도 쟁기가 도입된 이후에는 가구(家口) 단위로 바뀌었다.

그리고 삼국 시대에는 토목 기술이 발달하면서 논과 밭의 구획 단위가 넓어졌는데, 구획 단위 확장은 경작 면적 확대, 나아가 농경 생산력 증대로 연결되었다. 또한 삼국 시대에는 논으로 경작하던 곳을 밭으로 바꾸거나 밭으로 사용하던 곳을 논으로 전환하였음이 확인되었다. 경작지 전환은 지력(地力) 회복과 토양의 중화(中和)[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것이 섞여 각각의 성질을 잃거나 그 중간의 성질을 띠게 함]나 제독(除毒)[독을 없애 버림]의 효과가 있고, 결과적으로는 농경 생산량이 증가하였다.

[유적과 출토 유물에 나타난 부산 지역의 농경 기술]

부산에서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금정구 오륜대 고분군에서 살포와 호미가 출토되어 삼국 시대에 전용 철제 농구를 사용하였음이 확인되었지만, 아직 쟁기의 출토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그리고 경작지는 해운대구 좌동에서 발굴된 삼국 시대의 논을 제외하면 조사된 사례가 없다. 그러나 문헌 기록 및 다른 지역의 고고학 자료를 고려하면 삼국 시대에 부산에서도 쟁기를 사용하였음이 분명하고, 논의 운영 방식도 앞에서 살펴본 내용과 비슷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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