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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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梵魚寺鐘樓 |
영어의미역 | Jong-ru Pavilion at Beomeo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현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종루.
[개설]
종루(鐘樓)는 원래 종을 걸어 두는 누각을 말하는데, 범어사 종루(梵魚寺鐘樓)에는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 등 불전 사물(佛殿四物)이 갖추어져 있다.
[위치]
범어사 종루는 부산광역시 금정구의 범어사 경내에 위치한다. 범어사의 입구에서 범어사 일주문(梵魚寺一柱門)과 범어사 천왕문(梵魚寺天王門), 그리고 범어사 불이문(梵魚寺不二門)을 지나면 범어사 보제루(梵魚寺普濟樓)가 나오는데, 범어사 종루는 범어사 보제루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범어사 종루의 조성과 관련된 기록은 『범어사지(梵魚寺誌)』에 실린 1714년(숙종 40)의 「미륵 조상 중수기(彌勒彫像重修記)」에서 확인된다. ‘…명학 경진 건 종각(明學庚辰建鐘閣)…’을 통해 1700년(숙종 26)에 승려 명학이 종각을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의 ‘건(建)’은 중건(重建)으로 추정된다. 이후 범어사 미륵전(梵魚寺彌勒殿)을 중건한 1889년(고종 26)에 중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04년(고종 41)에 발간된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의 『한국 건축 조사 보고(韓國建築調査報告)』에 수록된 1902년(고종 39)의 「범어사 평면도」를 살펴보면 당시 종루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부산 범어사 대웅전(釜山梵魚寺大雄殿)으로 가는 계단 좌측 옆, 범어사 심검당(梵魚寺尋劍堂) 우측 앞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1915년의 「선찰 대본산 범어사 전경도(禪刹大本山梵魚寺全景圖)」와 『조선 고적 도보(朝鮮古蹟圖譜)』에 실린 1927년의 범어사 사진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범어사지』에 수록된 1947년의 「범어사 안내도」에는 종루의 위치가 현재와 같이 표시되고 있다. 따라서 범어사 종루가 정확히 언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27년에서 1947년 사이에 이건(移建)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1층도 개방하였으나 기둥 사이를 벽으로 막아서 기념품 판매점으로 이용하였으며, 최근에는 범어사의 원형을 복원하는 차원에서 다시 기념품 판매점을 철거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였다.
[형태]
2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이다. 부정형 덤벙 초석 위에 기둥을 세웠으며, 2층에 누마루를 깔고 그 위에 다시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주심포 형식으로 창방에는 보아지 형상의 창방 뺄목을 두었다. 보뺄목은 용머리를 조각하여 장식하였으며, 살미 끝에는 연꽃을 초각하였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공포의 형식이 전체적으로 범어사 미륵전과 흡사하여 범어사 미륵전을 중건한 시기와 같은 시기에 중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현재 범어사 종루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범어사이다. 범어사에는 범어사 종루 외에 최근 범어사 승가대학(僧伽大學) 맞은편에 세운 또 하나의 종루가 있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 종루의 창건 당시의 모습은 비록 알 수 없지만 기록을 토대로 중건 시기를 알 수 있다. 다만 건축 양식으로 볼 때 현재의 건물은 1700년의 중건 시기에 만들어졌다기보다는, 1889년에 중건된 범어사 미륵전의 공포 양식과 유사하여 19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범어사 종루는 19세기 당시 건축 양식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