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130
한자 朝鮮時代-場市
영어의미역 Occupations of the Joseon Dynasty
이칭/별칭 오일장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변광석

[정의]

조선 시대 부산 지역의 농민, 수공업자, 어염업자들에 의해 생산된 상품을 거래하는 장소.

[개설]

조선 시대의 부산은 곧 동래부(東萊府)였다. 동래부에서는 일반적인 정기 장시인 5일장을 비롯하여 간혹 부정기적으로 서는 장시도 있었다. 장시는 지방민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열리면서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이나 또는 부업으로 만든 수공업품과 어염 등이 교환 대상이었고, 미포(米布)나 전화(錢貨)를 매개로 거래되었다. 장시와 장시간을 순회하면서 행상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소위 부보상(負褓商)에 의하여 장시의 교역이 유지되어 왔으며, 주로 생활필수품의 경우는 수공업자나 소상인들도 취급하였다. 물화 집산의 요충지에서는 객주(客主)나 여각(旅閣) 등 자본이 많은 상인들에 의해 대규모의 상품 집적과 보관 및 분산이 이루어졌다.

[동래부 관할 장시]

동래부 관할 내에서는 여러 권역의 장시가 구분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엔 동래부 읍내장(邑內場), 좌수영장(左水營場), 부산장(釜山場), 독지장(禿旨場)이 중심이었지만, 후기로 내려오면 낙동강 수운을 통한 유통망이 발달하면서 이들과 연결되는 하단과 구포 일대의 장시 등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주요 장시의 개시일은 읍내장이 매월 2·7일, 좌수영장이 3·8일, 부산장이 4·9일, 독지장이 1·6일이었다. 또 『경상도 지도(慶尙道地圖)』[1872]에 의하면, 19세기 초에 신설된 하단장(下端場)은 5·10일장으로 읍에서 40리 거리의 사하면에 있다고 하였다.

[교역품]

동래부의 읍내장과 좌수영장에는 지역 향반(鄕班)을 비롯하여 많은 군사무임층을 대상으로 죽제품의 판매가 활발하였다. 특히 동래 읍성 밖 향교 부근의 수공업자들이 이것들을 조달하였고 읍내장에서 담뱃대와 각종 잡화류가 많이 유통되었다. 부산진성 관내의 장시 즉 부산장의 수공업자나 상인들은 왜관[두모포, 초량]에서 필요로 하는 곡물·채소 등 생필품을 주로 조달 판매하였다.

동래부에서의 농업 생산은 조선 전기에 직파와 이앙이 함께 행해지다가 후기에는 이앙이 일반화되어 벼·보리 등 농업 생산물이 유통되었으며, 읍내 객달언(客達堰)이나 화지언(和池堰) 등 많은 수리 시설이 생산 기반이었다. 수공업품으로는 면포·마포·견직물 등 직물과 신발·가마니·새끼·덕석 등 고공품(藁工品)들을 비롯하여, 도기소나 자기소에서 생산된 도기·자기·죽전(竹箭) 등이 유통되었다.

또 동래부 관내의 부산포 첨사영·해운포·다대포 만호영 일대의 염분과 어장에서 생산된 소금·어패류·해조류 등은 공납과 군수용을 제외하고는 지방민의 미포와 교환 판매되었다. 특히 이들은 하단포·구포를 기점으로 하여 낙동강 수운으로 내륙에까지 유통되었다. 이처럼 동래부 내에는 많은 상품의 생산과 상업 유통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