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5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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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斗場 |
영어의미역 | Deodu Market |
이칭/별칭 | 떡돌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연지 |
[정의]
조선 후기 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일대에 개설되었던 오일장.
[개설]
장시는 상인들과 일반민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물화의 교역장이다. 지방의 장시는 월 6회씩 5일 간격으로 개시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장시의 발달은 국지적인 시장권 형성과 함께 각 도를 넘어서 전국적으로 지역 간 물화 유통의 발달을 가져왔다. 덕두장(德斗場)은 강서구의 녹산장(菉山場), 사덕장과 함께 미나리, 대파, 딸기 등의 농산물을 거래하기 위하여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
[명칭 유래]
덕두(德斗)는 한자로는 원래 덕두(德頭)였다. 모래가 쌓여 언덕이 되어 배를 댈 수 있는 곳을 ‘덕달’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덕두가 되었다. 덕두리는 덕두본리, 동방, 금호의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중 가장 일찍 개간된 마을이 덕두본리였다. 덕두본리에는 낙동강을 건너 사상·구포로 건너가는 나루터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이름이 유래된 듯하다.
[형성 및 변천]
덕두장은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4일, 9일에 열리는 오일장이었다. 1934년에 대홍수가 있은 후, 제방을 새로 축조하면서 현재 위치인 소덕하리(小德下里)로 장이 옮겨 갔다. 일제 강점기에는 구포장과 쌍벽을 이룬 큰 하상 교역 시장이었다. 현재에도 오일장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처음에는 덕두 본리 마을에서 개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김해 국제 공항 인근의 대저 2동 자연 촌락인 덕두 마을에 개시되는 정기 시장의 장시로 장터도 골목길 안쪽에 있다. 전통 장터로 시설이 낡고 허름하여 황량하지만 비교적 장터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