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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지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5044
한자 禿旨場
영어의미역 Dokji Marke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부산광역시 사하구 구평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연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장시]
관련문헌 『동래부 읍지』|『동국문헌비고』
비정 지역 독지장 - 부산광역시 사하구 구평동

[정의]

조선 후기 현 부산광역시 사하구 구평동 일대에 개설되었던 오일장.

[개설]

장시는 상인들과 일반민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물화의 교역장이다. 지방의 장시는 월 6회씩 5일 간격으로 개시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장시의 발달은 국지적인 시장권 형성과 함께 각 도를 넘어서 전국적으로 지역 간 물화 유통의 발달을 가져왔다. 독지장(禿旨場)좌수영장[5일, 10일], 부산장[4일, 9일], 동래 읍내장[2일, 7일], 하단장[5일, 10일]과 함께 동래 지역의 5일장 체계를 이루었다. 또한 위치적 특성을 보면 김해 지역과도 교역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므로 꽤 큰 장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독지장에서는 현 사하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바다의 어류, 장림에서 생산된 소금, 수공예품 등이 교역되었다.

[명칭 유래]

독지는 마을 앞에 외딴 산, 즉 독뫼[獨山]가 있다는 의미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오늘날 사하구 구평동의 옛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독지장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70년 이전에 장시가 형성되었는데 1일, 6일에 열리는 오일장이었다. 현재에는 열리지 않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1932년 간행된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 방리조(坊里條)에 보면 사천면(沙川面)의 독지리(禿旨里)를 ‘관문에서 거리 43리’라 하고, 서평리(西平里)를 ‘관문에서 거리 49리’라고 한 것으로 보아 독지장은 오늘날의 구평동 북쪽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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