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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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敬漢 |
영어음역 | An Gyeongha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안경한(安敬漢)의 생몰년은 알 수 없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벌어진 뒤 범어사(梵魚寺)에서도 김봉환(金奉煥)·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과 범어사 지방학림 학생 김상기(金相琦)·허영호(許永鎬), 명정학교 학생 김한기(金漢琦) 등이 범어사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학생들을 규합하여 3월 18일 동래 장터에서 장날을 기하여 의거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명정학교 학생 오계운의 밀고로 3월 18일 새벽 복천동의 범어사 동래포교당에서 만세 시위의 주모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러나 검거를 피한 이들을 중심으로 18일 밤 40여 명의 범어사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학생들은 동래읍성 서문 근방에서부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동래 시장을 거쳐 남문까지 행진하였다. 19일에도 이들은 동래 시장 일대에서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격문을 뿌리고 만세 시위를 계속하였으며, 안경한 역시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때 많은 이들이 일제 경찰에 검거되었으나, 안경한은 체포되지 않았다.
[상훈과 추모]
1970년 부산광역시 금정구 남산동 금정중학교 교정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와 1995년 구서1동 동래여자고등학교 앞에 세운 범어사 3·1 운동 유공비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