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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2328
한자 金相煥
영어음역 Gim Sanghwa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나철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수학 시기/일시 1919년 - 범어사 명정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범어사 3·1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 징역 6월형을 선고 받음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연표보기 - 범어사 3·1 운동
출생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학교|수학지 명정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546번지지도보기
활동지 부산광역시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상환(金相煥)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서 태어났으며 생몰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1919년 부산 범어사(梵魚寺)명정학교를 다녔을 당시 미성년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출생 연도가 1900년쯤이라고 짐작된다.

1919년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범어사로 내려와 3·1 운동을 독려하자 차상명(車相明), 김한기(金漢琦) 등 7인의 대표자들이 서울의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범어사 3·1 운동을 단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3월 17일 명정학교범어사 지방학림의 졸업생 송별회에 모인 김상환을 비롯한 40여 명의 학생들은 김영규(金永奎)의 축사가 끝나자 독립 만세를 외친 후 복천동에 있는 범어사 동래포교당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미리 밀고를 받은 일본 경찰에 의해 일부가 체포되고 나머지는 강제 해산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물러서지 않고 다시 모여 보다 큰 규모의 시위를 동래 전역에서 단행키로 결의하였다.

이윽고 3월 18일 동래읍성 서문 근방에서부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문까지 행진하였고, 3월 19일에는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격문을 동래 군중들에게 배포한 다음 남문에서 동래경찰서까지 행진하였다. 김상환은 일본 경찰이 주동 인물들을 검거할 때 함께 체포되어, 재판에서 6월형을 선고 받아 부산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김상환이 참여한 범어사 항일 운동은 이후 부산·경상남도의 만세 시위운동에 기폭제가 되었기에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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