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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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尙南道道廳移轉 |
영어의미역 | Relocation of Gyeongsangnam-do Provincial Government Building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부민동 2가 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서용태 |
[정의]
1925년 4월 1일 진주부에서 부산부로 경상남도 도청을 이전한 사건.
[역사적 배경]
1894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지방 제도가 개편되면서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진주로 결정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부산·경상남도 지역의 중심지는 동래와 진주였다. 그러나 일제는 오로지 일본 본국과의 관계라는 자신들의 편의만을 고려하여 부산을 정치, 경제, 외교, 군사, 상공, 교육, 문화, 행정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1914년 동래부에서 부산부로 행정 중심지를 옮긴 데 이어 1925년에는 경상남도 도청마저도 진주부에서 부산부로 이전시켰다.
일제는 통치상 교통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도청을 옮기게 되었다고 하면서, 부산으로 도청을 이전한 이유를 부산은 항만 관문이며 교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산업·교육·문화 등의 시설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진주를 중심으로 하여 경상남도를 통치하기에는 진주가 서부 내륙에 치우쳐 있어 불편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민 통치의 효율을 높이면서 동시에 개항 이후부터 공을 들여 건설한 부산을 대륙 침략의 전초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경과]
경상남도 도청의 부산 이전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1924년 12월 8일 총독부령 제76호로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의 위치를 진주에서 부산으로 변경하면서부터였다. 부산부에서는 12월 8일 부협의회(府協議會)를 개최하고 부산부 부민정 2정목[현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자혜병원 신축 건물을 임시 청사로 정하였다. 당시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에 있던 부산부립병원은 시설이 협소하여 1923년부터 부민정에 병원 건물을 신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축 부산부립병원[자혜병원] 건물은 일제가 진주부민들의 반발을 의식한 나머지 병원 건물을 신축한다고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실제로는 도 청사로 지은 것이라는 설도 있다.
1925년 4월에 준공한 경상남도 청사는 부산부 중도정 2정목[현 부산광역시 서구 부용동 2가]과 부산부 부민정 2정목[현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1]의 총 2만 8828.8㎡[8,736평]의 택지에 건물 3개 동[각각 1,019.7㎡[309평], 990㎡[300평], 234.3㎡[71평]]으로 지어졌다.
본관 건물은 2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며 서구식 르네상스 양식의 변형된 형태로 건축되었다. 강한 정면성의 입면 구성과 좌우 대칭의 평면이 특징이며 양측면의 마무리 구성이 아름다운 건축물로 평가되는데, 처음 준공될 당시에는 일자형(一字形)으로 지어진 건물이 1960년대의 무리한 증·개축으로 인해 평면이 미음자형[囗字形]과 날일자형[日字形]으로 변하였다. 1925년 3월 31일까지 도청 이전의 모든 사무가 완료되었고, 4월 1일 진주부에서 부산부로 경상남도 도청이 공식적으로 이전하였다. 도청 이전 행사는 4월 17일 가졌으며, 실제 업무 개시는 4월 25일부터였다.
경상남도 도청 청사는 1945년 해방 이후에도 계속해서 경상남도 도청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부산이 대한민국의 임시 수도가 되면서 1953년 휴전 이후 서울로 환도할 때까지 임시 수도 정부 청사가 되었다. 당시 도청 본관 외에도 상무관은 국회 의사당으로, 뒤편 경찰국은 군·경합동작전사령부로 사용되었다. 전쟁이 휴전한 이후 다시 경상남도 도청으로 환원되었다.
1963년 1월 1일 부산이 정부 직할시로 승격된 이후에도 여전히 부산이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였기 때문에 계속하여 부산에 소재하다가, 1983년 7월 1일 창원이 도청 소재지가 되면서 마침내 58년 동안의 파란만장한 도청으로서의 역사를 마감하였다. 경상남도 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한 후 도청 건물은 부산지방법원과 부산지방검찰청 청사로 사용되었다.
[결과]
2001년 10월 법원과 검찰 청사가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으로 이전하면서, 2002년 이곳은 동아학숙에 매각되어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로 조성되었다. 이 가운데 옛 경상남도 도청 본관 건물은 건물의 역사성과 건축 양식의 특성을 감안하여, 2002년 9월 문화재청에서 등록 문화재 제41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2004년 12월 동아학숙은 80억 원을 들여 내부를 박물관 건물로 리모델링하여, 2009년 5월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새롭게 개관하였다.
[의의와 평가]
옛 경상남도 도청 건물은 대표적인 근대 관청 건물로서,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민족에 대한 수탈의 중심 기구이며, 6·25 전쟁기에는 임시 수도의 정부 청사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건물로서 역사적·상징적 가치가 매우 크다. 또한 경상남도 도청 청사는 부산역, 부산세관, 부산우체국 등과 함께 일제 강점기 부산의 4대 건축물로 불리기도 했으며, 지금은 사라진 부산시청, 부산 상품 진열관, 조흥은행 영주동지점 및 아직까지 남아있는 부산지방기상청 등 다른 통치 기구들과 비슷하게 일본 제국주의 통치의 위엄과 건축 기술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웅장하게 건축되어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