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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집, 책들의 숲 사라지다-사라진 서점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176
한자 冊-冊-書店-
영어의미역 The house of books and the forest of books are disappearing: Those who long for the disappeared bookstores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생활사)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현주

[서점 폐업 소식에 놀란 부산]

“책들의 집-당신의 삶을 건강하게 지켜주고, 아름답게 빛내주는, 책들이 살고 있는 집입니다.”

“책들의 숲-작은 새 한 마리도 따뜻하게 품어주는, 울창한 숲과 같이, 우리의 생각을 소중하게 품어주는 책들의 숲입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보서적 후문 입구에 붙어 있던 문구이다. 동보서적 후문에서 부전 도서관까지 이어지는 거리 일대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동보서적에서 책을 사고 나서는 독자들과 이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이, 책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말해주는 이 문구를 읽곤 했다. 동보서적이 사라지면서 책의 의미를 말해주는 이 문구도 지워졌다.

서면 도심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가 사라진 동보서적은, 그러나 여전히 랜드마크이다. “동보서적에서 만나!” 많은 부산 시민들이 서면에서 약속을 잡을 때 했던 말이다. 이제는 “옛날 동보서적 앞에서 만나!”라는 말로 약속을 하고 있다.

동보서적 폐업 소식을 접한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국(曺國) 교수는 2010년 9월 28일, 『부산 일보』에 쓴 기고문에 시민들이 약속 장소로 이용하던 동보서적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30년 전통의 ‘동보서적’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보서적은 1980년 문을 연 향토 대형 서점으로 부산 청소년 연극제 주최 등 부산의 문화 예술을 음양으로 지원했고, 독자적인 서평 잡지 『책 소식』을 발간한 문화 기업이었다. 필자가 고향 부산에 내려가 친구를 만날 때 선택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2010년. 부산은 9월에 동보서적을, 10월에 문우당을 잃었다. 문우당은 현재 전 문우당의 부장으로 근무했던 조준형이 지도 전문 센터 서점으로 다시 영업 중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기억하는 그 문우당은 사라지고 없다. 한 달 사이에 서면남포동의 도심을 지키고 있던 두 서점의 폐업은 많은 시민들을 추억 속에 잠기게 했다. 경희대학교 이택광 교수도 2010년 10월 27일 『국제 신문』 칼럼에 두 서점 이야기를 썼다.

“부산의 동보서적에 이어 문우당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치 오랜 벗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처럼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에서 자라고 학창 시절을 보낸 나에게 두 서점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동보서적에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문우당에서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을 펼쳐보던 때가 어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책을 좋아하는 나를 학문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어준 부산의 서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소설로 기록된 서점의 마지막 날]

동보서적과 문우당의 폐업은 2011년 『부산 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의 소재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단편 소설 『사라지는 것들』로 등단한 배길남 작가는 소설 속에서 동보서적과 문우당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책 찾는 게 몇 개 있어서 그러는데, 여기 큰 서점이 어디 있냐?’는 친구의 문자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난 14번째 발칙함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오후 5시 즈음의 출출한 시간에 정보센터에서 가스레인지로 라면을 끓여먹을까, 삼겹살을 구워먹을까, 하는 선택이었는데 침이 정말 흥건히 고여 왔다. 난 사래 걸릴 걱정까지 하며 침을 삼키고는 ‘서면동보서적, L백화점 쪽 영광도서, 남포동 쪽이면 문우당 서점’이라는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답을 보냈다. 그리고 15번째 상상에 돌입하려다 “여기가 뭐냐? 서울 간 지 얼마나 됐다고…. 쯧쯧!” 하고 친구에 대해 잠시 투덜거렸다. 다시 상상에 집중하려는데 ‘지금 동보서적 앞인데 간판 내려져 있구만’이란 문자가 왔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동보서적에 이어 문우당 마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한다. 배길남 작가는 그 마음을 이렇게 썼다.

“다른 것도 아닌 오래된 서점 두 곳의 죽음은 묘하게 감정을 흔들어 놓았다. 약속 장소를 동보서적으로 잡아 기다리던 시간에 책을 봤던 기억, 여행 지도를 구하려 문우당까지 찾아가던 일들 따위가 낡은 앨범의 사진을 뒤지듯 지나갔다. 그런 젖은 감정 사이로 억지로 접어두었던 기억들이 걷잡을 수 없이 펼쳐져 밀려왔다.”

주인공 ‘나’는 폐업을 앞둔 문우당을 찾아가 그 쓸쓸한 모습을 바라본다. 그 대목은 소설을 넘어 마치 르포 기사의 한 대목처럼 실제적이다.

“나는 길을 건너 자갈치 쪽으로 걸어가 문우당 서점으로 향했다. 동보서적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한 미안함을 문우당 서점에서나마 풀 수 있는 게 그녀 덕분이라 여겨졌다. 입구에 서 있었지만 오후 2시가 되어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하려다 꺼져 있었던 걸 상기하고는 서점 안을 살펴보기로 했다. 서점에 들어가자 매장 안은 한산했다. 폐업을 며칠 앞두었지만 매스컴에서 떠들었고, 책을 20% 이상 할인해서 북적일 거라 예상했는데 정반대였다. 다만 이 서점을 상징하던 큰 액자의 지도들을 내리느라 한쪽이 분주할 따름이었다. 가만히 그걸 바라보고 있으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주위의 직원이나 몇몇 손님들도 멍하니 서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여직원이 눈물을 터뜨렸다. 그런데 어디서인가 갑자기 플래시가 터졌다. 울고 있던 여직원은 플래시가 터진 쪽을 노려보다 나가버렸다. 언론사의 기자가 사진을 찍은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여태까지 관심도 주지 않다가 정작 문을 닫는다고 하니 취재를 왔을 것이다. 내리고 있는 액자와 여직원의 눈물, 그만치 좋은 취재 사진이 있겠는가 싶었다. 그러나 정작 이 곳에서 일하고 생활했던 사람들의 감정은 어떤 것일지….”

[동보서적 마지막을 찾은 시민들의 표정]

문 닫을 준비를 하는 서점을 묘사한 소설 속 장면이 이렇게 쓸쓸한데, 정작 서점의 문을 닫는 날은 어떠했을까. 동보서적이 폐업한다는 소식은 『국제 신문』이 가장 먼저 보도했지만, 문을 닫는 날의 표정은 부산일보사 TV-u에서 제작한 동영상이 담았다. 동보서적의 마지막을 취재해 만든 동영상의 제목은 「가을바람이 가져간 추억, 동보서적에서 만나자」였다. 부산일보사에서 기록한 동보서적의 마지막 10시간 동영상[http://news20.busan.com/content/busanilboMoviePlayer/player.swf?file=739]을 보면 놀라움과 서운함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작가인 김효문은 연방 셔터를 누르며 “동보서적이 오늘 마지막 날이라니까, 그동안 많이 다녔었던 정도 있고, 또 두 번 다시 못 올 것 같아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차후에 제가 나이가 들어서 사람들이랑 동보서적 이야기를 할 때가 있을거에요. 그럴 때 그런 사진들 꺼내보면서, 기억의 한 편이니까, 그런 기억들을 안 잊어버리게 남겨두는 거죠”라고 말했다. 동보서적의 마지막 영업을 보는 기분이 어떠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동보서적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까… 마치 죽을 거 같아요. 정말, 정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없어진다고 하니까 괜히 또 그런 기분이 생기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있을 때 좀 더 잘해줬더라면 하는 그런 생각도 있구요”라고 대답하며,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학원 강사 이동근도 책을 만지며 서점을 촬영하고 있었다.

“학원 일을 하고 있어서 수업이 9시까지 있는데 조퇴하고, 동보서적을 마지막으로 보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여행을 좋아해서 이쪽 여행 서적 코너에 자주 왔었는데. 미안하고…. 좀 더 많이 책을 구입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문을 닫는다니 많이 섭섭합니다.” 그는 여행 서적 코너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서점 안을 천천히 돌며 직원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는 시민은 동보서적의 25년 단골이라는 김성철이었다.

“기분이, 저의 육신이 하나 떨어져나가는 기분이지요. 가슴이 착잡하고, 오래된 지기와 헤어지는,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그런 생각 때문에 아쉬움이 듭니다. 서점이라기보다 문화의 공간으로서 만남의 장소도 되었고요. 지방의 서점들이 잘 되어야 하는데, 다른 서점도 동보서적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 큽니다.” 김성철은 단골로서의 안타까움을 동보서적 직원들과 함께 나누었다.

밖에서 동보서적의 모습을 폰 카메라로 촬영하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사하구 하단동에서 서면까지 온 우혁진은 “동보서적이 문을 연 지 30년이래요. 제 나이하고 같거든요. 그동안 자주 와서 책도 사고 했었는네, 사라진다고 하니까 아쉬운 마음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라며 동보서적을 한참 바라보았다.

네이버 블로거 ‘은빛 물소리’는 동보서적의 마지막을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이렇게 남겼다. “길 건너편에서 동보서적을 바라보니, 서면이라는 소비의 사막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오아시스 같습니다. 이제 눈으로 마음으로 담아야겠습니다.”

[지역 문인들과 출판 문화계의 반응]

시민들의 반응이 즐겨 찾던 서점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면, 문인들의 반응은 지역의 문화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닿아있다. 문학 평론가인 구모룡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동보서적이 지역 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을 돌아보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구 교수는 “80년대 전두환(全斗煥) 정권은 70년대를 이끈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을 폐간하였습니다. 문학과 문화의 출구를 봉쇄한 것인데 이에 맞서 여러 지역에서 무크지가 발간되었지요.”라며 당시의 분위기부터 설명했다.

구 교수는 “동보서적에서 펴낸 『토박이』는 인근 마산의 『마산 문화』와 더불어 당시 지역의 진보적인 목소리를 담은 매체”며 “지역 서점인 동보서적이 독자적으로 출판사를 등록하고 이러한 무크지를 낸 것은 지역 문화사에 길이 빛날 일이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구 교수는 또 동보서적에서 발행한 『토박이』에는 부산 지역의 학자, 문인, 사회 운동가 등이 대거 참여했다고 밝혔다. 구 교수는 “『토박이』 2호는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 선생 등이 이끈 5·7문학협의회와 같이 냈습니다. 그러나 3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국의 압력으로 폐간되고 말았습니다.”라며 『토박이』 폐간에 얽힌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구 교수는 이와 관련해 “동보서적은 외압으로 인해 무크지 『토박이』는 더 이상 내지 못하였지만, 요산 김정한 선생의 에세이집을 발간했습니다. 그리고 서점 내에 문화 공간을 마련해, 지역 문화인들의 토론의 장으로 제공하여 억압적인 사회에서 희망의 빛줄기를 발산하게 하였습니다.”라며 동보서적이 부산의 지역 사회에 미친 영향을 높이 샀다.

구 교수는 동보서적과 지금은 축소 영업하면서 이름을 이어가는 문우당 등 지역 서점이 지역의 문화에 기여했던 일들은 매우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산의 지역서점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시민들이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점은 단지 책을 파는 곳만 아닙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공간이고 그 곳에서 소통하게 합니다. 부산의 지역 서점들이 그러했습니다. 시민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한편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동보서적은 갤러리와 문화 센터를 두어 전시와 세미나 등이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이러한 일을 남아있는 영광도서가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서점들이 없어지고 축소된 것에는 우리 시민들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문화 사랑방들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봅니다.”

구 교수는 부산의 서점들이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사실도 돌이켜 들려주었다.

“부산의 서점들은 우선 지역 작가들의 작품집을 예우했습니다. 지역 문인들의 시집과 소설들이 시민들에게 잘 알려질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또 지역 문인들이 모여 토론할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하였습니다. 매월 동보서적 문화 홀에서 열리는 ‘동보 토론회’에서 동료 문인들을 만나는 일은 하나의 보람이었습니다. 동보서적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여러 문화 단체를 후원하였습니다. 청소년 연극을 장려하였고, 요산 문학제를 지원하였습니다. 아울러 부산작가회의 등 매체 발간의 비용을 부담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서점의 지원이 뒷받침되었기에 그나마 부산 지역 문학이 전국적인 위상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구 교수는 그런 역할을 해 왔던 부산의 서점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우리 문인들과 문화인들의 든든한 후견인이 없어진 것입니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장도 사라진 것이고요. 나아가서는 지역 문화의 동력이 약화된 것입니다.”

구 교수는 그렇게 지역 서점들이 사라지고 난 뒤 부산에 자리 잡은 서울의 대형 서점의 분점에 대해서도 한 마디 덧붙였다.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은 책만 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지역 문화에 기여하여야 합니다. 지역의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의 문화인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전망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 서정원 시인도 같은 심정이다. 서 시인은 지역에서 시를 쓰는 문인이고 또 지역에서 출판사를 경영하는 입장이라, 그 누구보다 지역 서점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지역 서점과 지역 출판사는 동병상련의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부산은 광역시로서의 대한민국 제2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 분야는 서울에서 활동을 해야만 좋은 예술인으로 대우받는다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출판사 역시 부산이라는 지역보다, 서울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이 인지도도 높아지고 여러 가지로 더 좋다고들 하지요. 뿐만 아니라 작가들 역시 지역 출판사에서 책을 발간하는 것보다, 서울에 주소를 둔 출판사에서 출판하는 것이 더 좋은 작가라고 자랑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책을 서울에서 출판해야 수준 높은, 인지도 있는 작가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물론 지역 출판사가 여러 면에서, 서울이라는 거대 자본과 인력으로 본다면 부족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역 출판사가 극복해야 할 부분이 서점과의 관계라는 면에서 지역의 서점은 지역 출판사에 고마운 존재입니다. 지역의 서점들은 지역 출판사를 보호하는 대상의 차원으로 대하며, 그동안 생산적인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특히 동보서적이나 영광도서의 경우는 지역 작가와 지역 출판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었을 뿐만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지역 출판을 위해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지역의 출판사와 작가들에게 많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동보서적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문인이면서 출판사 사장인 서 시인의 말은 지역의 문화 현실을 가감 없이 설명해준다 하겠다. 서 시인은 부산의 서점들이 서울의 대형 서점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배송 문제와 출판사에 판매 대금을 지불하는 시스템을 보강해야 한다는 것도 조언했다.

“부산은 물론이고, 서울의 대형 서점들이 지역 서점을 점점 잠식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 역시 새로운 경영 방식으로 지역 서점을 어렵게 만들고 있지요. 특히 대형 서점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병행을 하고 있다 보니 더욱더 지역의 서점들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부산의 예를 들면 동네 서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부산의 서적 도매상 역시 예전에 비해 몇몇 서점만이 남아있습니다. 인터넷 즉, 집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직접 집으로 배송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합니까. 지역 서점은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가 힘듭니다. 물류, 배송 문제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형 서점들은 결제 방법이 매월 지정된 날짜에 자동 지급되고 있으며 인터넷 역시 동일한 방법으로 지급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역 서점은 그렇지 못한데, 그것을 이해하면서도 출판사 입장에서는 안타깝지요.” 서 시인은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부산의 지역 서점이 이 점을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시인은 “개인적으로 동보서적이 사라진 후 여러 가지 불편한 것이 많다”는 마음도 털어놓았다.

동보서적이 사라지면서 우선 작가들의 공간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출판사로서는 동보서적에서 발간하던 월간 서평지 『책 소식』이 사라지면서,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홍보 지면이 없어졌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책 소식』은 지역 출판사에서 펴낸 책, 지역 문인들의 책을 빠뜨리지 않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지역 작가를 위한 지면도 많이 할애했습니다. 그리고 동보서적이 오랫동안 지역 문학과 문화를 위해 아낌없이 지원했던 문화 사업들의 맥이 끊어진 것은 참으로 아깝습니다. 동보서적은 사실상 영업 이익과는 무관한 ‘어린이 글쓰기 공모 대회’와 ‘청소년 연극제’를 1986년부터 개최해왔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서점들도 동보서적만큼 그렇게 문화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부산 시민들이 알고는 있는지…. 동보서적은 부산의 중심인 서면에 위치하고 있는 약속 장소였죠. 동보서적이 문을 닫고 난 뒤, 사람들은 이제 어디서 만나야 하는 거냐고 말해요. 동보서적이 있던 자리 앞에서 여기가 어딘가 하면서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도 그 근처에서 동보서적을 찾아 헤매는 사람도 있답니다. 문우당 서점도 마찬가지이죠. 남포동과 광복동을 지키던 문화 터줏대감 아닙니까. 명맥을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 예전의 문우당을 기억하는 시민들에겐 현재의 작은 문우당을 보면 더 마음이 아프지요. 걱정스러운 것은 부산의 지역 서점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지난 일을 돌아보니, 동보서적이 무척 그립습니다.” 서 시인은 출판사 사장으로서 동보서적을 드나들기도 했지만, 시인으로서 문학 행사가 열리는 동보서적을 수시로 드나들었기에 그리움이 더 크다고 말한다.

서 시인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부산의 지역 서점들을 바라보는 심정 역시 아슬아슬하다고 했다.

“현재 부산의 지역 서점 중 큰 서점이라고는 영광도서남포문고, 그리고 서적 도매상인 한성서적 등 몇몇 곳만 남아있습니다. 지역 출판사 역시 지역의 서점에서 책을 위탁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거죠. 현재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매일매일 도서 주문량 중에서 인터넷으로의 판매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역 출판사로서의 앞으로의 역할이 더 많아지고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망출판사 책은 ○○인터넷 서점에는 구입할 수 없던데’라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사실은 인터넷 서점이 지역 출판사에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알고 있는지 모든 독자 여러분들께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지역에서 서점들이 살아남는 길, 지역 출판사들이 살아남는 길은, 독자들이 책을 서점에서 직접 구매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부산의 서점과 부산의 출판사들이 사라지고 난 뒤 옛 추억을 그리워하는 것은 늦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출판사와 서점을 지키는 일이겠지요.”

[서점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

옛 문우당의 영업 부장이었다가 지금은 그 이름을 지켜가고 있는 현 문우당 조준형 사장은 “아직도 옛 문우당의 고객들이 현재의 문우당을 찾아온다.”고 말했다.

“처음 폐업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을 때, 이제 지도는 어디서 사야 하느냐며 항의와 걱정이 섞인 전화가 전국 각지에서 걸려왔지요. 문우당의 오랜 고객들이 걸어주었던 전화, 서점으로 직접 와서 손을 잡아주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서 다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도를 판매하던 서점이 서너 곳 있었지만 모두 사라지고 부산에서는 이 문우당 한 곳만이 유일하게 지도를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국립지리원에서 발행하는 저 지도를 비치한 자리에 책을 꽂으면 800권 정도는 꽂을 수 있지만, 지도를 비치하고 있습니다. 문우당 마저 지도를 판매하지 않으면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일주일에 겨우 20장 정도가 팔리지요. 하지만, 누가 그걸 알아주나요?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지요. 그렇지만 오랜 세월 문우당을 찾아 준 고객들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지도를 비치하고 있습니다.”

조 사장은 1988년 문우당에 입사해, 50세가 된 지금까지 부산의 현역 서점인으로 일하고 있다.

“25년간 서점에서 일했습니다. 문우당을 중심으로 이 일대에는 한때 10여 곳의 서점들이 있었습니다. 광복문고, 문창서적, 문화문고, 신천지문고, 근학도서, 문예서림, 중앙서점, 부영도서…. 그 서점들을 기억하는 시민들이 아직 있습니다. 서점에서 일했던 사람들끼리 만나는 모임에서는 옛 서점들의 이야기를 하곤 하죠. 그럴 때는, 아무래도 좀 서글픈 마음이 들죠.”

조 사장은 서점 외의 다른 직장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서점에서 일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서점은 그냥 직장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손길이 수십 번 지나가야 판매대 위에 올라가는 책은, 돈을 받고 파는 물건 이상의 의미가 있었으니까요. 옛 문우당에서 일할 때, 책을 보고, 책을 보는 사람들을 만나는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조 사장은 또 서점은 인터넷 서점이 흉내 낼 수 없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서점에 접속하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도서 홍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순위 등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웬만한 독서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만의 책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쉽지 않지요. 서점에서는 책의 향기와 함께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편리함만으로는 넘볼 수 없는 문화가 있지요. 문화는 억지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천천히 만들어지고, 천천히 젖어 들어가는 거지요.”

조 사장은 부산의 서점들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아쉬워하면서 이런 제안도 내놓았다.

“부산의 여러 곳에 작은 도서관들이 생기고 있는데, 지역 서점의 폐업을 아쉬워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작은 도서관으로 재탄생 시키는 방법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서점에서 꿈을 키웠던 시인]

“매일 서점에 가서 책을 읽었어요. 용돈을 열심히 모아 책값이 마련되면 좋아하는 책을 샀어요. 내 책이 한 권 한 권 늘어가는 만큼, 내가 읽은 책이 늘어가는 만큼, 내 꿈이 점점 현실이 되어갔지요. 나를 시인으로 키워낸 건 내가 다닌 서점들이었습니다.”

이민아 시인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서점을 드나드는 책벌레였다.

“수영에 살던 시절 매일같이 드나들었던 작은 서점이 있었어요.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로 올라가고 나이를 먹는 동안 그 서점이 점점 더 작은 규모가 되어가는 걸 지켜봤지요. 어린 마음에도 저 서점이 없어지면, 내가 좋아하는 책을 못 볼 텐데 그러면 어쩌나 걱정이 되곤 했죠. 그래서 열심히 용돈을 모아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곤 했어요. 돈을 모으는 중에도 매일 가서 책을 읽었어요. 하루는 내가 사려는 책을 살펴보던 주인아주머니가 ‘며칠 동안 와서 이 책을 다 읽었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이 책을 사려고 하느냐?’고 묻더라구요. 전 ‘다 읽었지만,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사려고 한다.’고 대답했죠. 아주머니가 ‘너처럼 착한 아이에게는 책값을 깎아 줘야겠다.’며 200원을 깎아줬어요. 그 서점 아직 있을까요?” 이 시인의 눈에 그리움이 깃들었다.

이 시인에게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가르쳐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중학교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처음 보수동 헌책방 골목으로 갔는데, 그 때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들이다.’라면서 고전 명작들을 권해주셨죠. 동네 서점에 비하면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백화점 같았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만 마치면 보수동으로 달려갔죠. 서점 문을 닫을 때까지 선 자리에서 몇 권씩 읽었는데, 집에 돌아오면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어요. 그래도 그 시절, 너무 행복했습니다. 용돈이 좀 모아지면 문우당으로 달려가서 신간 도서를 구해보곤 했어요. 그 시절 제게 문우당은 새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이었어요. 옛 문우당이 정말 그립네요.”

대학 시절, 그리고 직장 초년병 시절에는 동보서적을 자주 드나들었다.

“언젠가 꼭 필요한 책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는데, 동보서적 문학 코너 직원이 그 책을 며칠 만에 구했다고 연락을 해주었죠. 너무 고마워서 음료수를 사드리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는데, 직원이 ‘독자들에게 책을 구해드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동보서적에 들러 주신 것이 더 고마운 일’이라고 말하더군요. 그 순간 소통의 기쁨도 느꼈어요. 그 책의 귀중함을 저도, 그 직원도 알고 있다는 공감. 그것은 서점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교류였으니까요. 동보서적영광도서에서 매달 열리던 문학 토론회에 서 시인과 소설가들을 만나면서 나도 언젠가는 시인이 되어야지, 내 이름이 박힌 시집이 이 서점의 시집 코너에 꽂혀 있는 날이 올 거야 하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이 시인은 동보서적이 문을 닫은 며칠 뒤 서면을 일부러 찾아갔다고 한다.

“내가 자주 다녔던 동보서적이 문을 닫고 불을 켜지 않은 모습이 어떤지, 그 거리의 표정이 어떤지 궁금하더군요. 비가 오는 날 저녁, 도로 건너편에서 동보서적을 보았습니다. 서면 일대의 거리에 즐비한 술집과 옷 가게들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자랑하고 있었어요. 문을 닫은 동보서적은, 그 자리는 컴컴했어요.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거에요.”

이 시인은 그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부산이 음식을 꼭꼭 씹어주던 크고 튼튼한 어금니 하나를 버렸구나, 이제 부산은 음식을 제대로 못 씹어서 영양 섭취도 못하고, 곧 병들어 건강이 나빠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 시인은 이사를 하든, 직장을 옮기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네 서점을 자주 찾아 책을 산다고 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부산의 지역 대형 서점도 방문했다.

“그 서점들이 없어질까 봐서요, 서점이 없어지면 내가, 그리고 우리가 불편해지니까요. 그래서 서점에 가서도 한꺼번에 책을 많이 사지 않았어요. 자주 가서 한 권씩 샀지요. 두고두고 내가 찾아가야 할 곳이니까요. 그렇게 자주 가면, 내가 사려는 책 말고도 다른 책을 볼 수 있잖아요. 다른 책을 더 본다는 것, 그것은 사실 가장 고급 정보를 내 손으로 만지고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지요.”

이 시인은 책값이 싸다, 편리하게 집에서 책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서점을 찾지 않는 현실을 걱정했다.

“요즘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서점을 찾지 않아요. 서점은 인터넷 서점과는 분명히 달라요. 서점에 가면, 그리고 책이 가득한 서가를 바라보면, 내 안의 열정이 무엇인지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왜 흔들리는지도 알게 되고, 나의 결핍이 무언지 느끼게 되고, 내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도 알게 되죠. 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는 곳이 서점입니다. 서점이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부산, 우리는 정말 괜찮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변해갈까요?”

이 시인은 아직 남아있는 부산의 지역 서점을 부산 시민들이 지켜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점에 가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큰 불편함은 없을지도 모르죠. 감점은 없는 거죠. 하지만, 서점에 가지 않고 책을 읽지 않는 그런 삶에 더 이상의 가산점도 없습니다. 삶의 품격, 꿈의 품격이 다른 거지요.”

[서점이 사라진 자리는 어떻게 채워야 하나]

“서점은 도시에 생명을 주는 젖줄입니다.” 중앙동에서 인문학 서점이자 북 카페인 백년어 서원을 운영하는 김수우 시인의 말이다. “서점은 우리가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영양분을 전해주는 젖줄이며 핏줄”이라고 말하는 김 시인은 못 말리는 독서광이었다.

중앙여중을 다니던 학창 시절, 김 시인은 버스비를 아껴 학교 앞 도서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으며 대신동의 학교에서 양정의 집까지 걸어갔다. 대여점 주인에게서 “우리 대여점에는 더 이상 네가 읽을 책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월급을 털어 청학서림, 영광도서, 동보서적에서 책을 사 읽었다.

김 시인은 동보서적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이었지요.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 이 상처가 아물지 않을 것 같은, 두고두고 흉터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김 시인은 동보서적이 책만 팔고 사던 곳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동보서적은 문인들의 행사를 지원하고, 『책 소식』을 펴내고, 청소년 연극제나 어린이 글쓰기 공모 대회…. 참 많은 일들을 했지요. 시민의 정신을 키워내는 공간이었지요. 그 공간을 잃었다는 것은, 단순히 서점 하나가 문을 닫았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지금 부산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서울 대형 서점의 부산 지점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부산의 문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책을 팔기 위한 홍보성 행사와 이벤트는 있어도 부산의 문화를 살찌우는 기획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지는 않습니다. 그 부분의 부재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영향이 나타날 겁니다.”

김 시인은 부산 지역 서점의 미래를 걱정했다.

“거대 자본으로 밀어붙이는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과 경쟁하는 것은 불리합니다. 그들의 영업 형태는 독서를 소비문화로 만들고 있습니다. 동보서적, 옛 문우당 등 사라진 부산 지역 서점들은 책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존재론적 독서 문화가 가능했던 공간입니다. 그러나 거대 자본의 서점들은 독서를 소유론적 문화로, 자본주의의 소비 코드로 만들어 버리죠. 독서가 더 이상 감동이 아니라 실용 중심과 지식 중심이 된 겁니다. 이것은 성장이 아닙니다. 대형 서점이 들어서고, 대형 도서관이 생기고, 시설이 좋고 편리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책을 갑자기 많이 읽기라도 하나요? 요즘의 독서 경향을 보면 베스트셀러 몇 종의 책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국민 평균 독서량은 점점 떨어지고 있죠. 대형화되고 편리해지면서 사실상 날이 갈수록 더 피폐해지고 있는 겁니다.” 지역 서점이 사라지는 것은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런 현상이 초래할 결과는 더 크다는 것이다.

김 시인은 부산 지역 서점이 살아남을 방법은 오히려 더 작아지는 데에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큰 것은 소비적이지만, 작은 것은 존재적입니다. 70년대에 함석헌(咸錫憲) 선생이 ‘더 작아져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작아지고 전문화 되어야 합니다. 대형화되면 양으로 승부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자본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부산 지역 서점이 거대자본 대형 서점에 버틸 수 있을까요? 그것이 힘들다면 작아지고 전문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시인이 백년어 서원을 연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백년어 서원도 작은 서점이지요. 제가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던 책들이 이곳에 있습니다. 집에는 더 이상 둘 곳이 없기도 했구요. 또 작고 전문화된 공간, 또 그런 모임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유명인이 마이크를 들고 하는 대규모 강연보다 한 눈에 참석자가 다 보이는, 20~30명 정도의 작은 모임이 훨씬 큰 힘을 가질 수 있어요. 그 작은 모임들이 많아지고, 우리 주변에 자꾸 생기고 퍼져 나가면 세계를 바꿀 수 있어요. 시집, 역사, 음악, 여행… 한 주제 분야의 책을 가져다 놓고 그 작은 서점에서 주제와 관련한 모임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이것은 대형 서점에서 할 수 없는 겁니다. 물론 대형 서점은 그 규모에 어울리는 문화 행사들을 시민을 위해 계속 해야지요.”

김 시인은 5년째 백년어 서원을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큰 힘을 이루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동보서적과 옛 문우당이 사라진 자리, 그리고 또 많은 부산의 지역 서점들이 없어진 자리를 메우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지 몰라요. 그걸 메우는 방법이 작은 도서관, 작은 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작은 문화 공간들이 동네 모퉁이마다 있었으면 좋겠어요.”

[추억으로 남은 서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동보서적’ 혹은 ‘문우당’으로 검색을 해보면, 사라지고 없는 서점 공간을 추억하는 글을 올린 블로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그림읽기’는 이런 추억을 남겼다.

“부산 사람이면 동보서적 한번쯤 가 봤을 것이고, 그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하고, 만나고, 또는 책도 봤을 것이다.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서점이라 더 마음이 쓰라리다. 온라인으로 책을 사는 게 편하고 때론 더 경제적인 건 맞지만, 책들 틈에서 이런 책 저런 책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지고, 책 고르는 재미도 느껴보고, 서점 안에서만 느껴지는 사람 냄새랄까. 그런 게 좋아서 종종 서점을 들르곤 했었는데…. 동보서적이 있던 자리는 어떻게 변할까.”

부산을 떠나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언론에서 접한 부산 지역 서점 폐업 소식에 놀란 마음을 남기기도 했다.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열혈팬더’의 글이다.

“아침에 습관적으로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동보서적 폐업 소식을 알게 됐다. 절로 안타까움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내 어린 시절 추억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초등학교 때, 부산에서 제일 큰 서점에 간다며 들뜬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던 단발머리 내 모습이 그리워진다. 부산을 떠나 객지 생활 한 지 6년째. 부산에 내려가서 서면에 가면 동보서적 흔적을 보러 가야겠다. 너무 아쉽다.”

많은 블로거들이 남긴 기록들을 읽고 있으면, 동보서적과 문우당이 얼마나 많은 추억을 시민들에게 남겼는지 새삼 알게 된다. 그들은 서점이 문을 닫기 전의 모습을 사진으로도 남겨 두었다. 부산의 거리에서는 사라져 버리고 없는 서점이지만, 부산 시민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많은 글을 모두 소개할 수 없어, 최영철 시인의 글로 대신한다. 최영철 시인은 2010년 10월 16일 『부산 일보』에 쓴 칼럼에서 사라져 버린 부산의 서점에 이렇게 고별사를 바쳤다.

“오래 죽치고 있어도 타박하지 않던 그 책방들은 남루한 나의 젊음을 받아준 따스한 품이었다. 그 은신처가 없었다면 나의 남루는 금방 만천하에 탄로 났을 것이고 나날이 눈부시던 세상에서 나는 보기 좋게 도태되었으리라. 지난 30년 동고동락했던 연인, 그 책방들은 큰 나무 두 그루였다. 서면 거리에 무차별로 쏟아지던 환락의 뙤약볕을 피하기 좋은 곳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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