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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517
한자 全州李氏
영어의미역 Jeonju Yisi|Jeonju Y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
집필자 이승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씨시조 이한(李翰)
입향시조 이국로(李國老)
본관 전주 - 전라북도 전주시
입향지 동래 - 부산광역시 동래구
세거|집성지 거제동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지도보기

[정의]

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국로를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李翰)은 신라 시대에 사공(司功) 벼슬을 지냈으며, 태조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21대조이다. 전주 이씨의 분파는 공칭 122파로 거의가 왕자인 대군과 군을 파조로 하고 있다. 전주 이씨의 분파는 시대 구분에 따라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시조 이한부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까지의 사이에 갈라진 파이고, 또 하나는 목조부터 태조의 형제까지 사이에 갈린 파이며, 다른 하나는 태조의 후손으로서 제왕은 ‘불감조기조(不敢祖其祖)’라고 하여 조상이지만 조상이라 칭할 수 없기 때문에 왕자인 대군과 군을 파조로 하는 것이다.

목조 이전의 상계에서 갈린 파는 시조 이한의 15세손 이단신(李端信)을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 16세손 이거(李琚)를 파조로 하는 평장사공파, 18세손 이영습(李英襲)을 파조로 하는 주부동정공파와 이외에 목조의 방계로 이윤경(李允卿)을 파조로 하는 대호군공파, 이한의 22세손 이귀을(李歸乙)을 파조로 하는 문하평리공파 등이 있다.

목조 이후 태조 이전의 분파로는 목조의 아들인 이안천·이안원·이안풍·이안창·이안흥 등의 5대군파, 익조 이행리(李行里)의 아들인 이함녕·이함창·이함원·이함천·이함릉·이함양·이함성 등의 7대 군파, 도조 이춘(李椿)의 아들인 이완창·이완원·이완천·이완성 등의 4대군파, 그리고 환조 이자춘(李子春)의 아들이자 태조의 형제인 완풍 대군파(完豊大君派)와 의안 대군파(義安大君派) 등 18대군파가 있다. 한편 태조의 후손으로 고종에 이르는 사이의 분파는 일반적으로 25대군파와 74군파, 도합 99군파로 알려져 있으나 후손이 없거나 입양 관계로 두 파가 한 파가 되는 경우도 있어 실제로는 그 수가 훨씬 줄어들 것으로 생각된다. ·

[입향 경위]

전주 이씨의 동래 입향조는 이국로(李國老)이다. 그는 임영 대군(臨瀛大君) 정간공(貞簡公) 이구(李璆)의 6세손으로 전라도 광주에서 왔다. 임영 대군은 조선 세종의 넷째 아들로, 어머니는 소헌 왕후 심씨이다. 이국로의 후손은 잘 알 수 없다. 입향 시기는 조선 후기로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로 추정된다.

[현황]

2000년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부산의 전주 이씨는 4만 619호, 13만 2418명[남 6만 3975명, 여 6만 8443명]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동에 양녕 대군 고성파보 거벌 문중이 세거지[거제동 전주 이씨 세거지]를 이루며 살고 있다. 양녕 대군 고성파보는 양녕 대군, 순성군[양녕 대군의 장남], 헌양군 이사조(李嗣租)[순성군의 둘째], 완구정(完丘正) 이소남(李小南)[헌양군의 셋째], 이옥견(李玉見)[완구정의 후손], 이승길(李承吉)[이옥견의 증손]로 이어지면서 고성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일부는 고성에 남거나 언양, 부산 등지로 이주하였다.

이승길의 증손 이장백(李長伯)이 1754년(영조 34) 부산 용호동 백학산에 처음 묘를 잡았으므로 이를 부산 전주 이씨 양녕 대군파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장백의 동생 이장선(李長仙)의 묘 역시 백학산에 있고, 이장선의 후손들은 용호동에 터를 잡고 산 것으로 보인다.

거제동 전주 이씨는 이장선의 동생 이장경(李長京)에서 시작되는데, 언양에 터를 잡았던 이장경의 아들 이종철(李宗喆)이 다시 고성으로 돌아간 뒤 이종철의 장남인 이기엽(李基燁), 이기엽의 장남 이치일(李致日), 이치일의 둘째 아들 이병용(李丙龍)[1860년생]이 부산 거제리에 처음 묘를 쓴 것으로 보아 용호동 쪽보다는 100여 년 이상 늦게 부산에 입향했음을 알 수 있다.

부산의 양녕 대군파는 매년 1회 종친회를 개최하는데, 현재 꾸준히 유지되어 내려오는 집안은 ‘거제동 전주 이씨’가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용호동 쪽은 현재 와해된 것으로 보이며, 가끔 집안 계보 문의를 위하여 거제동을 방문한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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