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213 |
---|---|
한자 | -獅子 |
영어의미역 | The Lion of the Sea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필남 |
[정의]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소설가이자 아동 문학가인 이주홍이 1981년에 발표한 장편 동화.
[개설]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난 향파 이주홍(李周洪)[1960. 5. 23~1987]은 부산이 배출한 대표적인 소설가이자 아동 문학가이다. 1925년 『신소년(新少年)』에 「뱀 새끼의 무도」를 발표하고, 1929년 『조선 일보』에 첫 단편 소설 「가난과 결혼」이 입선하여 문단에 나왔다.
이주홍의 장편 동화 「바다의 사자」는 조선 숙종(肅宗) 때 죽음을 무릅쓰고 두 번이나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밝히고 온 안용복(安龍福)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인지를 일본을 상대로 설득하고 각서를 받아 온 안용복의 행동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초등학생 대상의 책이다. 1981년 5월 1일에 갑인출판사에서 『바다의 사자 』로 출간하였고, 1996년 8월 16일에는 우리교육에서 『바다의 사자 안용복』으로 제목을 바꾸어 재출간하였다.
[구성]
「바다의 사자」는 조선 시대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온 안용복의 일대기를 동화 형식으로 꾸민 작품이다. 또한 독도에 얽힌 재미난 전설과 삽화 등이 삽입되어 있는 구성을 보여 주고 있다.
[내용]
안용복의 집은 부산 바닷가 쪽에 있었다. 그 때문에 안용복은 왜군에게 시달리고 돌아오는 조선 어부들의 억울한 통곡을 들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로 인해 안용복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숨 하나 희생하여 이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을 구해 낼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힘쓸 것이라고 굳게 다짐하였다. 또한 아버지는 안용복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때에 고기잡이를 하러 바다로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였는데, 안용복은 어쩌면 아버지가 왜적들 손에 죽은 게 아닌가 생각하였다. 이러한 점들이 안용복이 의사(義士)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금의 초량 동쪽에 있던 왜관에서는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와 무역도 하고 외교도 하였다. 안용복은 말을 배우기 위해 틈만 나면 왜관으로 갔다. 말을 배우기 시작한 지 일 년이 가까워지니까 웬만한 말은 다 알아들을 수가 있었고, 또 웬만한 말도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지만 일본말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였다. “나는 이 일본말을 무기로 해서 앞으로 훌륭한 외교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안용복의 의기는 하늘을 찌를 듯 스스로를 불덩어리같이 흥분시켰다.
안용복은 20세의 당당한 청년이 되었다. 그러나 안용복의 앞에 슬픔이 찾아온다. 한 마을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던 유유가 외삼촌이 사는 다대포로 이사를 갔다가 왜적에게 팔려 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유유는 안용복보다 두 살 아래인 18세로, 어머니와 단 두 식구였는데 어려운 살림 때문에 농사를 짓는 외삼촌이 있는 대대포로 간 것이었다. 하지만 유유는 어머니의 병[결핵]을 낳게 하기 위해 왜인으로부터 돈을 받아, 부산포 왜관을 들러 대마도로 돌아가는 왜인들의 배에 올랐다. 이를 견딜 수 없었던 안용복은 유유를 구하기 위해 대마도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안용복은 어머니의 반대로 대마도로 가지 못하고 울산으로 갔다. 울산으로 가기 위해 구서동과, 팔송정, 두구리, 서창 마을을 지나자 안용복은 허기를 느꼈다. 그때 안용복은 왜적을 만나 싸워 물리치는 등의 일을 겪은 후 자신의 지혜로 유유를 구할 방도를 찾게 되었고, 유유와 결혼을 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안용복은 왜국의 해적이 우리나라에 발을 못 디디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수군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울릉도를 지키려는 노력,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려는 행위를 계속해 나갔다. 하지만 안용복은 수군이 되어서도 왜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였다.
안용복은 박어둔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 사람들이 마음대로 우리나라의 영토에서 굴과 고기들을 잡아가는 것을 막으려 노력하였다. 또 여러 시행착오 끝에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울릉도가 우리나라 것이라는 증명서와 함께 다시는 출입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 왔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참으로 어리석었다. 영문은 모르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울릉도와 독도에 출입을 금하였는데, 그곳으로 간 것이 국법을 무시한 짓이라며 안용복을 사형하라고 신하들이 말하였다. 또한 그들은 울릉도만 우리 것이라고 표기해 놓고, 실수로 독도는 표기해 놓지 않아 지금의 일본이 독도가 자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원인을 만들어 놓았다.
훗날 안용복은 귀향을 갔고, 일부러 일본으로 증명서를 받기 위해 간 것은 납치되어 갔다며 요즘의 백과사전까지도 오류를 남기고 있다. 그때의 일본인들은 멀쩡한 이름 울릉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게다가 독도를 마쓰시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울릉도와 독도가 자기네 땅인 양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그 섬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입장이었다.
원통한 안용복은 일본 어선과 충돌하여 수군 박어둔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 오키 섬으로 납치당해, 대마도로 떠났다. 대마 도주의 기나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감옥살이를 하면서까지 받아 낸 각서에는 “다시는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의 영토라 우기지 않으며, 또 조선의 땅을 넘보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안용복은 고국의 영토를 지켜 낸 마음에 아주 당당하고 의기양양하게 고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대마 도주의 거짓말로 각서를 위조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또 다시 30일 동안 감옥 생활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으로 오자마자 “그까짓 섬 하나로 두 나라 사이의 대립을 만들었기 때문에” 남해의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특징]
「바다의 사자」는 부산 출신의 외교가이자 어부인 안용복의 생애를 다루고 있어 부산의 명소들이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독도를 지키기 위한 일환으로 일본으로 건너가는 과정에서 울산, 일본 지역까지도 자연스럽게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 특히 부산 동래와 초량 등지는 역사적으로 부산에서도 가장 부산스러운 동네라고 칭할 수 있는 면모를 갖춘 곳인데, 이곳에 자주 나가 놀았던 안용복이 나라를 구한다는 설정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의의와 평가]
안용복의 이야기는 일찍이 부산의 두 작가가 동화와 소설로 썼다. 향파 이주홍의 초등학생을 위한 동화 『바다의 사자 안용복』과 솔뫼 최해군의 장편 소설 『동해의 독전사 안용복』이 책으로 나온 바 있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서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