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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5719
한자 梁敷河
영어음역 Yang Buha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인물
성별
대표경력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 모의
묘소 양부하 묘비 -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

[정의]

조선 후기 동래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왜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온 인물.

[가계]

할아버지는 호조 정랑에 증직된 양조한(梁潮漢)이다. 양조한은 임진왜란 때 동래 향교 훈도로서 대성전에 모셔진 성현의 위패를 동래성 내 정원루(靖遠樓)로 옮긴 후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과 함께 순절하였다. 아버지는 양홍(梁鴻)이며, 동래성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순절하였다. 부인은 경주 이씨(慶州李氏)이다.

[활동 사항]

양부하(梁敷河)는 12살 때 왜의 포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끌려갔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를 보고 조선 아이도 일본 아이와 같구나 하며 일본어를 가르치니 3개월 만에 능숙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껴 가까이 두었다. 양부하는 일본에 온 중국 사신 심유경(沈惟敬)과 왕래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암살할 음모를 모의하였다. 심유경이 객관에 머물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날 때마다 환약을 한 개씩 먹으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를 이상하게 여겨 물으니, 심유경이 이 약을 먹으면 기운이 넘치고 몸이 좋아진다고 하니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함께 약을 먹었다.

그런데 그 약은 독약이었다. 심유경은 중국으로 돌아와서 해독제를 먹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계속 그 약을 먹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양부하는 서부의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의 사람이 되었지만,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모리 데루모토가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에게 패하게 된다.

양부하가 모리 데루모토에게 귀국하기를 청하자, 내 영토는 깎이고 먹을 것이 적으니 많은 군사를 기를 수 없다면서 귀국을 허락하였다. 귀국 문서인 노첩(路帖)[통행증]을 받아 귀국하고자 하는 조선인 82명을 모아 쓰시마 섬[對馬島]를 거쳐 부산 감만포로 돌아왔다. 일본에 끌려간 지 27년 만인 1619년 39세 때이다.

[묘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노포동에 양부하 묘비가 있다. 앞면에 ‘처사 남원 양공 휘부하(處士南原梁公諱敷河)’라고 되어 있고, 그와 나란히 ‘배 유인 경주 이씨(配孺人慶州李氏)’라고 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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