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5046
한자 東萊邑內場
영어의미역 Dongnae-eup Marke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연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장시]
관련문헌 『동국문헌비고』|『임원경제지』
비정 지역 동래 읍내장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정의]

조선 후기 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일대에 개설되었던 오일장.

[개설]

장시는 상인들과 일반민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물화의 교역장이다. 지방의 장시는 월 6회씩 5일 간격으로 개시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장시의 발달은 국지적인 시장권 형성과 함께 각 도를 넘어서서 전국적으로 지역 간 물화 유통의 발달을 가져왔다. 동래 읍내장(東萊邑內場)좌수영장[5일, 10일], 부산장[4일, 9일], 독지장[1일, 6일], 하단장[5일, 10일]과 함께 동래 지역의 5일장 체계를 이루었다. 19세기 초에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의하면, 당시에 거래되었던 품목이 나온다. 농산물로는 쌀, 콩 등이 거래되었고, 수산물로는 청어, 대구, 해삼 등이, 수공업 제품으로는 면포, 마포, 비단, 식기, 종이 등이 거래되었다.

[명칭 유래]

동래구의 명칭은 조선 시대 지명인 동래부에서 비롯되었다. 지명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삼국사기 지리지(三國史記地理志)』[1145년, 고려 인종 23]에서 ‘동래군은 본래 거칠산국(居漆山國)이었는데, 경덕왕동래군으로 고쳐…….’라는 기록이다. 동래의 명칭 유래는 동래의 ‘래(萊)’ 자에서 보는 것이 있고, 독로국에서 변형된 것으로 보는 것이 있다. 먼저 동래(東萊)에서 ‘래(萊)’ 자의 의미가 경작되지 않은 거친 곳이라는 의미가 있어, ‘거칠산’ 지명의 ‘거칠다’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신중동국여지승람』[1530년]에 ‘옛 장산국(萇山國)이다. 혹은 래산국(萊山國)[내산국]이라고도 한다. 신라가 점유하고는 거칠산군을 두었는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라는 기록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삼국지(三國志)』[233년~297년] 위지동이전의 변진조에 삼한 시대 24개의 국명 중에 ‘독로국’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동래로 추정하여 ‘독로’에서 ‘동네’로 다시 ‘동래’로 음전되어 불렀다고도 본다.

[형성 및 변천]

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동래 지역의 장시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실제 형성은 그 이전으로 추측되며 2일, 7일에 열리는 5일장이었다. 1924년 일제 강점기에 공설 시장으로 지정되었다. 이 공설 시장에서는 곡류, 어류, 채소를 비롯하여 땔감 등이 매매되었다. 1930년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의 공터에 노점 형태로 개시되었던 동래 읍내장이 1937년에 총 부지 면적 약 8,046.28㎡의 동래 공설 시장으로 승격되면서 시장의 건물이 등장하였고, 상인들에게 분양되어 매일 열리는 상설 시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동래 시장의 읍내장은 동래 관아의 관문 밖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에는 상설 시장의 형태로 동래구 복천동 일대에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