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5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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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機張場 |
영어의미역 | Gijang Marke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연지 |
[정의]
조선 후기 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일대에 개설되었던 오일장.
[개설]
장시는 상인들과 일반민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물화의 교역장이다. 지방의 장시는 월 6회씩 5일 간격으로 개시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장시의 발달은 국지적인 시장권 형성과 함께 각 도를 넘어서 전국적으로 지역 간 물화 유통의 발달을 가져왔다. 기장장(機張場)은 농촌과 어촌이 공존하는 지역 특성으로 산지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이 가장 가깝게 집결되는 곳이었다.
[명칭 유래]
기장은 본래 갑화량곡현(甲火良谷縣)으로 불렸다. 갑화량곡은 이두식으로 풀이하면 갑국(甲國) 또는 갑향(甲鄕)이라는 의미가 된다. 갑은 음독하여 갓[邊]과 통하는 것으로 보아 갓마을[邊城, 변두리 마을]이라고도 하고, 또는 갑은 10간인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의 첫 글자이므로 ‘첫째 마을’, ‘첫 마을’이라고도 본다. 즉 바다에서 육지로 귀환 할 때 처음으로 닿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757년(경덕왕 16) 갑화량곡현(甲火良谷縣)에서 기장현으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통일 신라 시대 때부터 기장이라는 지명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통일 신라의 모든 제도명과 지명을 한자식으로 변화시켰다. 기장의 명칭은 『서경(書經)』의 고우기장주(苦虞機張註)에 ‘노기기장(弩機旣張)’이라 하여 국토를 지키기 위하여 변방을 수비하는 의미가 있는데, 이에 바다에 닿는 첫째 마을로서 변방의 군사적 중요성을 고려해 한자화한 지명으로 추론된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기장의 다른 이름으로 차성(車城)이 기록되어 있다. 차(車)는 정수리 수(首)를 뜻한다. 차성(車城)은 수성(首城)이다. 이는 해안과 접하는 군사 요충지이므로 기장을 ‘수성= 머리성’이라는 의미에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1831년 간행된 『경상도 읍지(慶尙道邑誌)』를 보면 기장 읍내장은 성문 안에 있었으며, 5일·10일 장으로 열렸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그 이전에 장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언제 어디에 설치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1956년경에는 기장군 기장읍 서부리 정미소 터에 가축 시장이 개설되었으나 1960년에 대라리 기장지서 앞으로 오일장이 옮겨지면서 가축 시장이 사라지게 되었다. 자리가 협소하여 1964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984년 시장으로 등록되었으며, 1985년에 현대식 상설 시장으로 변모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기장장은 최초 설립 지역을 확정할 수 없지만 1905년경에는 기장군 기장읍 동부리에 있는 기장초등학교 정문 앞 공터와 서부리의 수각 다리[수계교]까지의 골목이 장터로 형성되어 있었다. 기장장의 후신인 현재의 기장 시장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읍내로 104번길 16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