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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3492
한자 和池堰
영어의미역 Hwajieon Pond
이칭/별칭 화지리제,초읍언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성지로51번길 60[초읍동 225] 초읍 시장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수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제언
관련문헌 『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동래부지(東萊邑誌)』|『여지도서(輿地圖書)』
폐지 시기/일시 1965년연표보기 - 매립
비정 지역 화지언 비정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 시장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 서면에 있던 최대 규모의 제언.

[명칭 유래]

화지리라는 이름에서 보면 화지언(和池堰)은 화지(和池)라는 연못에 인공 제방을 쌓아 올리면서 지역의 경관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초량의 화지산화지사 역시 화지언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형성 및 변천]

화지언은 동래부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제언(堤堰)이다. 『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1468]에는 동래현의 제언으로 모두 여섯 곳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제언의 필요성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18세기 편찬된 『동래부지(東萊邑誌)』에 따르면 화지언은 둘레 약 368.18m[1,215척], 길이 약 146.97m[485척], 폭 약 67.88m[224척], 수심 약 2.42m[8척]에 달하는 규모이었다.

화지언은 19세기 일부 증축되었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행정 구역 개편으로 초읍언(草邑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65년 매립되기 전까지 약 3만 3000㎡[1만 평]에 가까운 큰 못으로 많은 낚시꾼들을 불러들인 초읍동의 빼어난 경관 가운데 하나이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경상도 속찬 지리지』에는 화지언은 부고개제(釜古介堤)[고성언(古城堰)]와 함께 현의 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화지언과 함께 동래부 서면에 속한 신지언[현 연지초등학교 일대]이 동래부에서 약 5.11㎞[13리]에 있었다고 한다면 약 10㎞[10리] 거리인 화지언의 위치는 초읍 시장 일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관련 기록]

『경상도 속찬 지리지』 제언조에 “동래현의 서쪽에 화지리제가 있다. 그 못에 물댄 논은 모두 16결 65부이다[縣西禾池里堤 灌漑 十六結六十五負]”라고 기록되어 있고, 1740년에 펴낸 『동래부지』에 “화지언은 동래부 서쪽 10리에 있다. 방죽의 길이는 485척이며 폭은 224척이다[和池堰在府西十里長四百八十五尺廣二百二十四尺]”, 『여지도서(輿地圖書)』[1765]에 “화지언은 동래부 서쪽 10리에 있다. 못의 둘레는 1,215척이며 물 깊이는 8척이다[和池堰 在府西十里周一千二百十五尺 水深八尺]”라고 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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