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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기자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301
한자 東萊記者團
영어의미역 Dongrae Journalists Association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보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언론 단체
설립자 한일철(韓一撤)
설립 시기/일시 1930년 1월 4일연표보기 - 설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0년 9월 25일 - 간친회 및 임시 대회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9년 1월 14일 - 동래기자단 재출범
최초 설립지 동래기자단 - 부산광역시 동래구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동래 지역에서 결성된 기자 단체.

[설립 목적]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는 한국인 발행 민간지의 지국장과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언론 활동을 벌였다. 이 기자들이 모여 기자단을 구성하였는데, 1924년 4월 15일 부산기자단이 출범하였고, 1930년 연초에 동래기자단(東萊記者團)이 별도로 결성되었다.

[변천]

1930년 1월 4일에 동래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이 모여 동래기자단을 결성하기위해 창립 대회를 열었다. 당시 조선일보 부산지국장이던 한일철(韓一撤)이 의장을, 김명룡(金命龍)이 서기를 맡은 이날 대회에서는 위원장에 박일형(朴日馨), 위원에 김순영(金淳英), 김금득(金今得), 김명록, 구정서(具廷書), 한일철, 이영석(李永錫) 등 6명이 선출되었다. 동래기자단은 출범 다음 달인 2월 4일에 위원회를 개최하여 경남기자동맹이 의뢰한 이재민 통계표 작성과 생활 상황 조사에 관한 것 등 안건을 토의한 후 위원들의 업무 분장을 했으며 서무는 김명룡과 김금득, 조사는 한일철과 김순영, 재무는 이영석과 구정서가 맡기로 결정하였다.

1930년 9월 25일에는 간친회를 겸한 임시 대회를 개최하였다. 동래기자단은 그 이후 활동이 미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1939년 1월 14일에 각 신문사 동래 지국장들이 모여 다시 동래기자단을 출범시켰다. 이 때 모인 각 신문사 지국장들은 조선일보의 최시봉(崔時鳳), 매일신보의 곽종섭(郭鍾燮), 경성일보의 이광룡(李光龍), 동아일보의 이재현(李在鉉) 등이다. 동래기자단의 해체 과정에 관해서는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없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기자단 출범 당시 조직의 목적을 천명한 것은 확인되지 않지만 공동 취재가 주된 목적이었던 것 같다. 참여 신문사들이 돌아가면서 매달 당번을 맡아 그 달의 사건을 취재해서 월례회에 보고함으로써 기자단이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일종의 풀(pool) 취재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당시 부산에 많은 언론사의 기자가 상주하면서 취재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산의 신문뿐만 아니라 국내의 다른 지역, 즉 경성과 인천, 대구 등지에서 발행하는 신문, 그리고 일본 본토에서도 큐슈와 오사카 지역에서 발행하는 신문들도 부산에 특파원을 상주시켰다고 한다. 이는 당시 부산에 일본 거주민도 많았지만 부산이라는 지역이 그만큼 중요한 거점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인 발행 민간지들의 연대 모임은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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